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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Oct 18. 2023

내 아내(였을 너)의 남자

곤충으로부터 사람 14. 

맨 아래 연가시 (혐오) 사진 주의!




만 8세 아들에게 동물의 짝짓기를 어느 수준에서 알려줘야 하는지 보통 고민이 아니다. 곤충은 그나마 형태가 난잡스럽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큰 짐승들의 경우는 인터넷 검색을 최대한 막을 궁리만 하게 된다.

아들은 곤충을 채집하며 다양한 종의 짝짓기를 목격했는데, 두 개체가 밀접하게 만난 후 알이나 새끼의 형태로 새로운 생명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생기는 것만큼 신비한 일이라고 감탄했다. 나 또한 한 생명을 잉태해 본 엄마로서, 그 신비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신이 모든 사람에게 다 닿을 수 없으니, 대신에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각 가정에 한 명씩 내려 보냈다는 얘기는 딱 들어맞는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위대해! 나를 대접하란 말이다!


아들과 남편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중이다. 안 먹히겠지만. 

이리하여, 신神의 발톱만큼도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할당량을 갖게 된 엄마로서의 나는, 가끔 아동학대류의 사건을 보면 세포 하나하나마다 분노가 들끓어 뇌가 저릿저릿할 정도이다. 모성애를 강요할 수는 없고,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최소한 엄마로서의 도리는 좀 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상상한다. 임신하기 전에, 신이 각 예비 엄마를 테스트해서 그 기본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를. 그래서 탈락하면 제발 좀 임신을 막아주기를, 간절하게 상상한다. 오랜 불임을 겪었던 나로서는, 같은 고통을 받고 있을 예비 엄마들에게 제발 그 기회를 넘겨주기를 손 모아 기도할 뿐. 갑자기 사마귀 짝짓기에서 엄마의 의무를 생각하다 보니 숟가락 하나 더 얹어서 아빠를 생각한다. 누가 그러더라. 같이 애를 낳았으면 적어도 '젖'은 아빠한테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차차, 딱 맞는 얘기다. 


부유수유乳授乳라도. 신이시여! 




카카와 코코의 짝짓기는, 여러 번 시도했으나 모조리 실패였다. 카카는 아무래도 몸집이 너무나 작았고 코코에게 다가설 용기도 애당초 없어 보였다. 억지로 붙여 놓기라도 하면 카카가 코코한테 잡아 먹힐까 봐 온 신경을 다 쏟아야 했다. 고심 끝에 아들은 코코와 덩치가 비슷한 수컷 사마귀 한 마리를 채집해 왔다. 힘이 팔팔 넘친다 하여 팔팔이!



짝짓기 중 먹이를 먹고 있는  암컷 코코. 이렇게 해야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지 않는다. 


정신없이 메뚜기를 먹고 있는 코코를 보자마자, 팔팔이는 거침없이 다가가 곧장 짝짓기를 시작했다. 교미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꾸준히 먹이를 공급하는 임무를 맡은 나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청명한 오후에 본능에 앞선 곤충 두 마리의 사적인 시간을 바로 곁에서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귀의 짝짓기는 하루종일, 아주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좋냐?


녀석들의 짝짓기는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는데 다행히도 코코의 꽁무니에서 정포가 발견되었다. 짝짓기를 한다고 해서 모두 산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정포가 생겨야 비로소 유정란을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며칠이 지나면 꼬리를 흔들며 거품을 만들고 그 안에 유정란이든 무정란이든 몇 번에 걸쳐 알을 낳는 것이 사마귀의 특징이다. 짝짓기 한 번만에 정포를 발견하기는 힘들다는데, 기특하구나! 


 11시 방향 암컷 코코, 오른쪽은 코코와 교미를 끝낸 신입 팔팔이. 그리고 아래는 원래 그녀의 수컷이었을 카카.


짝짓기에 실패한 카카는 자신의 아내였을 그녀가 다른 놈팡이와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을 처량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짝짓기가 끝난 후에도 카카는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떠나질 않았다. 딱히 뭔가를 하는 건 아니었다. 공격을 하는 것도, 다시 교미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맴돌았다. 말이 통하면 좀 물어나 볼 걸. 아니 위로나 좀 해 줄 걸. 


카카야, 그냥 가. 여기에 너의 자리는 없어. 새 충생을 찾아 떠나......


 내가 이래서 카카를 살뜰히 돌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도 없고, 고독한 카카


한동안 뒷방 늙은 노총각처럼 주눅 들어 있던 코코는 어느 날부터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느려진 몸으로 좀비처럼 방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기력이 없어 멀리까진 가지도 못했다. 의자의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었으나 다리만 간신히 잡고 매달려 있었고, 창문 저 끝까지 잘도 올라가던 녀석은 아래쪽에 매달려 창밖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어느 날엔 맛있는 먹잇감이 가득한 채집통에 무심히 올라가 있고, 또 어느 날엔 코코나 팔팔이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나 물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먹이를 주면 대충 맛만 보다가 그만두었고 물만 찾았다. 앞다리를 양쪽으로 쫙 벌리고 강아지처럼 머리를 내려 입으로 쪽쪽인지 할짝할짝인지 그렇게 물을 먹어댔다. 짝짓기에 실패한 곤충의 비애인가, 혹은 실패의 쓴 맛을 본 청춘의 방황이라고만 생각 했다. 단 몇 분도 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았다. 없던 체력마저 소진될까 봐 카카를 케이지에 넣어두고 쉬게 해 주려던 그 날밤에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카카는 연가시에 감염되었다. 


아침에 카카를 보러 케이지에 얼굴을 가까이 대는 순간, 카카의 꽁무니에서 꿈틀대는 연가시를 직접 보고야 말았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연가시 양반. 






다음 편 이어집니다. 


제목 사진 출처-

https://img.animalplanet.co.kr/news/2019/06/28/700/04zh626283gmh708i5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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