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16.
욕은 아니고요
꽁무니를 열심히 움직이며 거품을 만들어 내는 코코는 내게 또 한 편의 신비스러운 장면을 선물해 주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밟으면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던 보잘것없는 생명들이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터져 죽고, 어른들의 공포로 잘려 죽는 그들의 생生은, 비로소 가까이 보니 기승전결이 잘 짜인 영화처럼 러닝타임을 꾹꾹 채운다. 나는 이럴 때 인간으로서 한없이 겸허해지고 숙연해진다. 동물이라는 동종同種과 인간과 곤충이라는 이종異種의 경계에서 나는 딱히 한 것 없이 고등高等한 종種으로 선택받았을 뿐이다.
곤충을 키우시라.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니......
점점 커지는 풍성한 거품 안에 수백 개의 알이 들어 있을 것이다. 무정란을 낳기도 하지만, 정포를 확인했으니 아마도 유정란일 확률이 꽤 높다. 사마귀는 한 번의 짝짓기로 이런 산란을 두세 번 연속으로 하기도 한다.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무정란일 확률이 높고, 설사 짝짓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산란은 한다. 여러 번 유정 산란을 할수록 수명이 줄어든다는데, 의미 없는 산란을 반복하면서 오래 살기보다는 이렇게 의미 있는 자손을 남기고 가는 것이 충생에 조금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무자식이 상팔자
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아니 나는 엄마라서 행복하다, 고 되뇌어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비교적 단단해진 알집을 다른 채집통에 옮겨 놓았다. 저기서 알이 사마귀로 부화할지 아닐지는 이른 봄이 돼 봐야 알 것이다. 간혹, 따뜻한 곳에 두면 봄인 줄 알고 부화를 빨리 한다는데 그럼 한겨울에 그 어린것들을 다 내다 버릴 수도 없고(사마귀는 5도 이하에서는 대부분 죽는다) 결국,
수백 마리 사마귀들이 우리 집에 들끓게 되겠지.
따뜻한 봄이 되어 풀숲으로 방생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아니 내가 돌봐야 하겠지. 먹이는 밀웜이나 귀뚜라미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한데, 갓 태어난 어린 사마귀들에겐 주로 초파리를 먹여야 한다고 한다.
겨울에 초파리 택배를 받아서 핀셋으로 한 마리씩 떠 먹여야겠지.
아니지, 그건 싫다. 나는 알집을 냉장실에 넣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아주 추운 베란다에 놓아서 필사적으로 그들의 이른 부화를 막고야 말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도 알집 그 자체로 한겨울을 나니까, 꿋꿋하게 잘 버텨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으로 응원만 할 것이다. 생명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작고 단단한 알집의 신비여, 적절하게 알아서 열려다오.
알에서 깨어나면 딱 두 마리만 남기고 다 방생이야, 알겠지?
아들은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보여 주었다. 코코의 산란 소식을 듣고 몇몇이 새끼 사마귀의 분양을 신청한 모양이다. 반 전체에 분양을 하고도 남을 어린 개체들은 반드시 반드시 꼭 방생을 하고야 말 것이다.
마음 약해지기 절대 없기!
아들은 우리 동네 파브르로, 알만한 꼬마들은 다 아는 동네 곤충소년이다. 어떤 친구는 느닷없이 저기서 도마뱀을 봤으니 좀 잡아 달라고 하고, 어떤 아이들은 놀다가 무서운 벌레가 나오면 없애달라고 부탁을 한다. 가장 잦은 호출은, 신기하거나 처음 보는 곤충들이 있을 때인데, 동네 들개처럼 어슬렁거리는 아들과 마주치기를 기다렸다가 혹은 사방으로 찾으러 다니다가 꼭 손에 쥐어주곤 한다.
고오마압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행을 다녀온 아들의 친구가 강원도 사마귀를 데리고 왔다. 친구의 엄마는 아들과 고군분투하며 사마귀를 채집하는 데 걸린 노력과 공포, 집념 등을 한참 쏟아냈고, 두 마리를 채집해 왔는데 밤새 한 마리가 다른 사마귀를 잡아먹었다며 기겁을 했다. 이제 나에게 그런 동족포식은 놀라울 일도 아니므로, 나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해 주고 혹시 그 사마귀를 집에서 키워볼 생각은 없느냐며 반려 곤충 추천을 은근슬쩍 들이밀었다. 당분간 기타 등등의 사마귀는 들이고 싶지 않았다. 산란을 한 코코도 있고, 짝짓기를 마친 팔팔이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저 알집이 안전하게 부화를 한다면 우리 집은 사마귀판이 될 것이므로.
단칼에 거절을 당하고, 강원도 사마귀를 받으러 아들 친구의 집으로 갔다. 사마귀용 장난감이라며 돌멩이 두 개까지 넣은 작은 케이지를 들고 1층으로 내려오는 친구에게 아들은 냅다 달려가 사마귀부터 관찰했다. 팔팔이도 그렇고 이 녀석도, 성충 갈색 사마귀는 진짜진짜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카카가 얼마나 귀엽고 산뜻한 생김새를 가졌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초록색 성충은 그나마 이제는 귀여운 편인데 우와, 이런 큰 갈색 사마귀는 진짜 못되게도 생겼다. 마귀마귀 사마귀.
게다가 이것들이 또!!! 언제 봤다고, 강원도에서 왔다고 강산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암컷 사마귀가 먹이를 먹는 동안 팔팔이 이 녀석은 또 짝짓기를 시도했고 단번에 성공했다. 이번엔 어느 수컷(카카)의 아내로 왔으나,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한 그 암컷(코코)이, 자기와 짝짓기를 한 남편인지 수컷인지 아무튼 그것(팔팔)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낯선 암컷(강산) 둘이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하염없이 초라하게...... 카카가 그랬던 그 모양으로.
난잡과 불륜의 끝은 역시 파국이로군.
그리하여 나는 산란을 한 코코와 산란을 앞둔 강산이 두 암컷을 돌봐야 했다.
어릴 때 집 마당에서 자주 보던 땅강아지가 하필 가던 길을 잃었는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떡하니 출몰했다. 그냥 넘길 아들이 아니었다. 한참 관찰을 한 후, 산란을 할지도 모를 강산이에게 먹이로 주었다. 사마귀 몸의 2/3는 될만한 큰 놈이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크다 싶었다. 하지만 땅강아지를 본 강산이는 주저 없이 사냥에 나섰고, 격하게 반항하는 땅강아지를 머리부터 알뜰하게 먹어 치웠다. 그렇게 한참을 맛있게 먹고, 다음 날 강산이는
죽었다.
배가 잔뜩 부른 채로. 사체에서 연가시가 나오지도 않았고, 어디 감염된 곳도 없어 보였다.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른 채 아침에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장폐색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큰 놈을 준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며, 또 한 마리의 사마귀를 묻어가며 우리는 제법 사마귀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코코는 며칠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2차 산란에 성공했다. 1차보다 더 크고 예쁜 알집이 하나 더 생겼다.
야...... 호......
다음 편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