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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Oct 18. 2023

나를 도와줘!

곤충으로부터 사람 15.




내가 일찍이 이 사마귀 녀석들을 집에 들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끔찍한 죽음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망할 놈의 연가시가 불쌍하고 귀여운 카카를 죽게 만드는 걸 혼자 라이브로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나의 고귀하고 값진 눈물을 벌레 따위를 위해 흘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벌레공포증 나는.

예전이었으면 방문을 닫아 놓고 남편이나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집에서 나가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제법 어엿한 반려곤충인이 된 나는 스스럼없이 핀셋을 들어 카카 꽁무니에서 연가시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말로만 듣던 연가시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낭설이 생길 만큼 그 모습은 끔찍했다. 몇 번이고 손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연가시는 길었다. 마저 쭉 뽑아내어 케이지에 던지니 미친 듯이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했다.


출처- 나무위키 '연가시의 일생'


연가시는 짝짓기로 최대 2천만 개 정도의 알을 낳고 그 알을 곤충 유충이 먹고, 그 곤충이 성체가 되고, 그것들을 사마귀 등의 포식자가 먹고, 다시 그 숙주에서 빠져나온 연가시는 짝짓기...... 무한 반복되는 연가시의 일생이란다. 연가시가 인간에게 무해하다는 사실은 이전에 밝힌 바 있지만, 


생긴 거 자체가 해악이다! 




그날 밤, 나는 두 번째 정든 사마귀와 작별을 해야 했다. 몸이 불편해서 오래 살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너무 빨랐다. 우리 가족들은 또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서로 눈물을 감추며 몰래 울다가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곤충이 죽어도 슬픈 건 맞다,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우리끼리라도 인정은 하자. 놀려대지 말자!

연가시가 몸 안에 있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더없이 불쌍하고 짠했다. 마지막에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물을 먹어댄 것이 정말 연가시의 위력이라면 그 기세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어쩌면 행운이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종들의 놀라운 생명 퍼포먼스였다. 그게 카카라서 너무 싫었지만, 이렇게 경험하고 공부해 보라는 반려사마귀 카카의 선물일 수도 있었다. 


사마귀를 여럿 보다 보니 카카처럼 귀엽고 부드럽게 생긴 녀석은 정말 드물다. 이쁘다!


연가시가 몸에서 빠져나오면 숙주는 그날을 넘기기 힘들다는데, 카카는 말 그대로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영혼을 쭉 뽑아낸 자리엔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하찮은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었다.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물을 주면 간헐적으로 입을 갖다 댔으며, 건드리면 살아있다는 최소한의 반응을 했다. 아들은 한참 울먹이다가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다며 나가서는, 카카의 몸 색깔과 똑같은 도토리를 주워다 그 옆에 놓아주었다. 어설프지만 진심을 다한 그림과 함께. 다행히도 카카는 동굴동굴한 도토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도토리 위에 머리를 잠깐 올리고 있기도 했고 그 주변에서 몸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기대어 있곤 했다. 하지만 그저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게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서, 최대한 용기를 내어 카카의 목덜미를 만져 보기로 했다. 다리는 아직 자신이 없고, 매끈한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카카야, 고생했어. 그리고 곤충을 좋아하게 도와줘서 고마워. 우리도 너를 도왔기를. 

아프지 말고, 잘 가!


예상외의 느낌이었다. 약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단단하고 또 매끈했다. 마치 얇은 대나무를 만지는 느낌이랄까. 카카가 충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한참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내가 핀셋으로 살짝 건드릴 때마다 솟구친 날개를 파르르 떨어 반응해 주었다. 말 못 하는 곤충이 던져주는 마지막 인사를 늦은 밤, 나는 오롯이 느꼈다.

자고 일어난 아침에, 카카는 모로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귀여운 도토리들과 함께, 고단하고 그래도 편안했을 충생을 마감했다. 


아들은 멋지게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카카는 대빵이의 곁에 묻혔고, 아들은 묘비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요란한 대빵이의 죽음 이후에 여러 곤충들을 지켜보며 이제는 그 미물들의 생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들의 죽음은 일상처럼 종종 닥칠 것을 배웠을 것이었다. 여전히 죽음은 슬펐지만 우리는 모두 받아들이고, 또 배워나갔다.

한 충생이 저물어가는 그 시점에 신기하게도 코코는 드디어 1차 산란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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