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15.
내가 일찍이 이 사마귀 녀석들을 집에 들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끔찍한 죽음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망할 놈의 연가시가 불쌍하고 귀여운 카카를 죽게 만드는 걸 혼자 라이브로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나의 고귀하고 값진 눈물을 벌레 따위를 위해 흘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벌레공포증 나는.
예전이었으면 방문을 닫아 놓고 남편이나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집에서 나가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제법 어엿한 반려곤충인이 된 나는 스스럼없이 핀셋을 들어 카카 꽁무니에서 연가시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말로만 듣던 연가시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낭설이 생길 만큼 그 모습은 끔찍했다. 몇 번이고 손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연가시는 길었다. 마저 쭉 뽑아내어 케이지에 던지니 미친 듯이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했다.
연가시는 짝짓기로 최대 2천만 개 정도의 알을 낳고 그 알을 곤충 유충이 먹고, 그 곤충이 성체가 되고, 그것들을 사마귀 등의 포식자가 먹고, 다시 그 숙주에서 빠져나온 연가시는 짝짓기...... 무한 반복되는 연가시의 일생이란다. 연가시가 인간에게 무해하다는 사실은 이전에 밝힌 바 있지만,
생긴 거 자체가 해악이다!
그날 밤, 나는 두 번째 정든 사마귀와 작별을 해야 했다. 몸이 불편해서 오래 살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너무 빨랐다. 우리 가족들은 또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서로 눈물을 감추며 몰래 울다가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곤충이 죽어도 슬픈 건 맞다,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우리끼리라도 인정은 하자. 놀려대지 말자!
연가시가 몸 안에 있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더없이 불쌍하고 짠했다. 마지막에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물을 먹어댄 것이 정말 연가시의 위력이라면 그 기세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어쩌면 행운이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종種들의 놀라운 생명 퍼포먼스였다. 그게 카카라서 너무 싫었지만, 이렇게 경험하고 공부해 보라는 반려사마귀 카카의 선물일 수도 있었다.
연가시가 몸에서 빠져나오면 숙주는 그날을 넘기기 힘들다는데, 카카는 말 그대로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영혼을 쭉 뽑아낸 자리엔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하찮은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었다.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물을 주면 간헐적으로 입을 갖다 댔으며, 건드리면 살아있다는 최소한의 반응을 했다. 아들은 한참 울먹이다가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다며 나가서는, 카카의 몸 색깔과 똑같은 도토리를 주워다 그 옆에 놓아주었다. 어설프지만 진심을 다한 그림과 함께. 다행히도 카카는 동굴동굴한 도토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도토리 위에 머리를 잠깐 올리고 있기도 했고 그 주변에서 몸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기대어 있곤 했다. 하지만 그저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게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서, 최대한 용기를 내어 카카의 목덜미를 만져 보기로 했다. 다리는 아직 자신이 없고, 매끈한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카카야, 고생했어. 그리고 곤충을 좋아하게 도와줘서 고마워. 우리도 너를 도왔기를.
아프지 말고, 잘 가!
예상외의 느낌이었다. 약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단단하고 또 매끈했다. 마치 얇은 대나무를 만지는 느낌이랄까. 카카가 충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한참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내가 핀셋으로 살짝 건드릴 때마다 솟구친 날개를 파르르 떨어 반응해 주었다. 말 못 하는 곤충이 던져주는 마지막 인사를 늦은 밤, 나는 오롯이 느꼈다.
자고 일어난 아침에, 카카는 모로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귀여운 도토리들과 함께, 고단하고 그래도 편안했을 충생을 마감했다.
우리 카카는 대빵이의 곁에 묻혔고, 아들은 묘비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요란한 대빵이의 죽음 이후에 여러 곤충들을 지켜보며 이제는 그 미물들의 생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들의 죽음은 일상처럼 종종 닥칠 것을 배웠을 것이었다. 여전히 죽음은 슬펐지만 우리는 모두 받아들이고, 또 배워나갔다.
한 충생이 저물어가는 그 시점에 신기하게도 코코는 드디어 1차 산란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