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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자몽 Sep 27. 2020

아내가 수험생이 됐다

슬기로운 신혼생활 vol.12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아내가 책상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인기척을 하자, 아내가 부릅뜬 눈으로 돌아봤다. 빛나는 두 눈이 맹렬한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려구!”

“갑자기?”


아내의 갑작스런 선언이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픽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내는 지금 비웃는 거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부주의하게 내뱉은 웃음을 얼른 거둬드리고선 아내 옆에 앉았다. 아내는 자신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하나둘 꺼내놓았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보니 집 보러 다니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느니, 부동산에 관심이 생기다 못해 꽂혀버렸다느니, 공인중개사만큼 당장 도전하기에 적당한 게 없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잠시 숨겼던 웃음이 자꾸만 다시 터져 나왔다.


사실, 아내는 매년 공무원 시험을 보러 다닌다. 언젠가 의지 가득한 얼굴로 공무원이 되겠다고 선언하더니, 덜컥 모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프리패스 서비스’를 결제해버렸다. 무려, 18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3개월 만에 공무원 시험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매달 결제되는 할부금만큼은 미련이 남을 수밖엔 없었나보다. ‘프리패스 서비스’를 연장하기 위해선 공무원 시험 접수 내역과 성적표가 매년 필요했기에, 아내는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공무원 시험을 계속 봐야만 했다. 여전히 아내는 연례행사를 치르듯 공무원 시험장에 간다.


“아, 이번엔 진짜라고오!”


그랬다. 아내는 늘 진심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플로리스트가 되겠다며 학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직접 만든 작품을 SNS에 하나씩 올리며, ‘진심으로’ 재미있어 했다. 이름도 낯선 해외 품종 꽃들을 달달 외워 자신만의 위시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꽃구경하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결혼식에 다닐 정도였으니, 그 뜨거운 열정을 도무지 의심할 수 없었다. 당장 꽃집이라도 차릴 기세였지만, 그때도 아내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그 뒤론 취미로라도 꽃을 꽂는 일은 없었다.


‘이번엔 진짜’라며 시작했던 베이킹은 딱 ‘스콘’까지였고, 향수를 만들어 팔겠다며 방산시장에서 사온 재료들은 집에 그대로 쌓여 본래의 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의 관심사는 속눈썹 연장술부터 앙금 떡 케이크까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뻗어나갔다.


이번엔 정말 굳게 마음먹었다며, 공인중개사가 될 거라 다짐하는 아내 앞에선 일단 응원을 보냈지만, 사실 아내가 꼭 꿈을 이루길 바라진 않는다. 머지않아 변덕이 나서 공부를 그만둔다고 해도 좋겠다. 한편으로 내심 아내의 또 다른 도전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자! 아니면 말고.’를 좌우명을 사는 사람 같다. 아내완 정반대인, 뭐라도 시작할라치면 재보고 따져보다 결국은 접고 마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으로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아내의 꿈과 도전이 보기 좋다. 가끔은 왠지 모를 통쾌함마저 느끼곤 한다. 아내의 도전이 내내 계속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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