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2008)
첫눈이 쌓인 밤, 낯선 이웃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맞이할까.
환대와 두려움, 사랑과 거부 사이에서 주체는 늘 흔들린다.
스웨덴 영화 <렛 미 인>(2008)은 그 질문을 뱀파이어라는 낯선 타자의 형상 속에서 던진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어두운 밤, 오스칼은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돼지처럼 꽥꽥거려 봐”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날 밤 낯선 부녀가 옆집으로 이사 온다.
오스칼은 학교에서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분풀이하듯 칼로 찌르는 연습을 한다. 그때 낯선 옆집 소녀 이엘리가 인기척 없이 나타나 소년의 유일한 말벗이 되어준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기적처럼 시작된다.
스웨덴의 평화롭고 적막한 풍광을 배경으로 한 이 낯선 뱀파이어 영화는 비평과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장르의 재발견’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복수를 꿈꾸는 소년과 살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소녀는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12살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으로만 보일 수 있는 설정에, 뱀파이어가 가진 운명의 아이러니가 균형 있게 공존한다. 또한 원작 소설에서 이엘리가 양성구유자라든가 호칸의 소아성애 같은 설정을 제거해, <렛 미 인>은 아름답고 슬픈 한 편의 이국적 동화로 탈바꿈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이러한 ‘장르의 재발견’, ‘장르의 최전선’이라던가 순수한 그 무엇의 재현에 있지 않다. <렛 미 인>은 괴물의 모습을 한 타자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영화에서 처음 오스카에게 다가올 때, 이엘리는 검은 머리에 창백한 얼굴로 얇고 추레한 옷을 입고 맨발로 등장한다. 그녀는 오스카에게 호감을 보이면서도 “보다시피 너랑은 친구가 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이엘리는 뱀파이어이기도 하지만 머리와 피부색을 보아 이민자(혹은 혼혈) 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타자 중에서도 가장 멀리하고 싶은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초대받지 않으면 결코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뱀파이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중반부 이후, 이엘리는 자신이 뱀파이어임을 알게 된 오스칼의 집에 찾아온다. 오스칼은 호기심에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고 손짓으로만 한다. 초대 없이 들어온 그녀는 온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다.
이 장면은 그녀가 ‘언어로’ 말을 해야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이엘리는 상징적 네트워크에 저항하는 타자일 뿐만 아니라, 상징적 질서 안에 포함된 균열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렛 미 인>은 괴물 같은 타자를 주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는 괴물 같은 타자를 동일시하기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이 죽음은 단순한 신체적 죽음뿐 아니라 주체의 상징적 말소를 의미한다. 영화에서 이엘리 때문에 뱀파이어가 된 중년 부인 요케는 “뭔지 모르게 그 아이가 감염시켰어”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마을 주민들 또한 살인을 일삼는 괴물을 밝혀내어 처리하려 한다.
두 번째는 이 징그러운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기꺼이 껴안는 것이다. 영화에서 모호하게 처리되는 호칸과 이엘리의 관계는 마을에서는 부녀 관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괴물을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친 애인 관계이기도 하다. 늙고 쓸모없어진 호칸은 새로운 사랑에 빠진 이엘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를 12살 오스칼이 채운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잠시라도 내가 되어줘”라고 속삭이고, 오스칼은 기꺼이 그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렛 미 인>에서 진짜 사랑이란, 자신의 현존재 전체를 접시에 올려 타자에게 내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