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연인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금물

by 생각하는냥

내게는 아주 오래된 여자 친구가 있었다. 공일오비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는 그런 오래된 여자 친구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사이에 어떤 놈팽이 하나가 중간에 끼어들기 시작하였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꼭 이런 사람은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 잘생겼고 멋진 사람이다. 게다가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이런 친구들은 미술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하필이면 여자 친구의 관심사도 미술이다. 원래 이 친구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의미 없는 그런 존재였는데 하루는 그가 말하기를, '여자 친구를 뺐겠다'고 하는 거다. 하두 어이가 없어서 허세를 부리며 그러려면 그래 봐라 라고 해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날 여자 친구를 만났다. 오래된 나의 사랑스런 여자 친구를. 그런데 그날따라 여자 친구는 매우 샤방샤방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이쁘면 이쁘다라고 하면 될 것을 '그 놈팡이 때문에 이렇게 입고 나온 거냐'며 쓸데없이 여자 친구에게 빈정댔다. 마음 상한 여자 친구는 결국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서버렸다. 가버리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꺼진 전원. 하필이면.

뭔가 석연치 않아 미안하단 말을 하고픈 마음에 여자 친구 집으로 걷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때 여자 친구의 음성메시지에서는 그 놈팽이의 저장된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을 새도 없이 당장 여자 친구의 집으로 헐레벌떡 뛰기 시작하였다. 땀 흘리며 여자친구의 집에 도착하였으나 여자 친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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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렇게 가지 마. 제발. 이러지 말라고.'


그렇게 가슴 떨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정신줄 놓은 채 집 주변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달리고 또 딸렸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어서 일어나, 그러다 또 지각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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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소리였다. 그렇게 두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던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여자 친구로 출연해준 아내가 깊은 잠을 고이 자고 있었다. 꿈에 출연하여 열연을 펼쳐준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아내는 꿈속에서까지 긴장을 타게 하는 마법의 열쇠를 가지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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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타이틀 사진에 강아지 사진을 올린 이유는 알겠지? 이사갈 때 나 꼭 데리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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