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에서 불금까지

모기는 사랑이다

by 생각하는냥

능욕을 당하는 중이다.


녀석은 지금껏 내가 만난 녀석들에 비해 너무도 빨랐다.


녀석이 왼쪽 손등위에 앉았다. 숨을 죽이고 오른손을 살그머니 들어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내리쳤다. 그런데 이 녀석 마치 그것을 지켜 보고 있기라도 하듯 손이 닿기도 전에 쪽쪽 빨아대던 빨대를 고이 접더니 유유히 날라가 버렸다. 난 그 어느때보다도 최선을 다해 내리쳤건만 짝 소리나게 손등만 괜히 아프기만 하고 녀석은 어디론가 도망가버렸다. 며칠째 능욕을 당하는 중이다.


녀석은 며칠전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쑥 나타났다. 불법 주거침입이다. 112에 신고하면 잡아가줄까? 다른 놈들은 대체로 자고 있을 때라든지 아니면 뭔가에 심혈을 기울여 넋이 빠져 있을 때 절대 놓치지 않고 다가와 피를 빨아먹고 갔는데 이 녀석은 눈앞에서 피를 빨아 먹는다.


나름 여자라고 몇번은 봐줬는데 농락을 당하는 수준이 되고보니 이제 나도 이판사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째 능욕을 당하는 중이다. 어찌나 빠른지 이제는 정말 대놓고 눈 앞에서 빤다.


무단 주거침입도 너무할 일인데 피까지 공유해야 하니 미치고 환장할 일 아닌가. 때려 잡아도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니 홍길동이 따로 없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에 물린 모기라도 되는걸까?


내 피를 공유하고 싶으면 일단 아내 허락부터 얻어야 하는데 이리 늦은 밤에 단 둘이서 놀아도 되는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우리 갈때까지 가보자.


몇번을 앵앵 거리더니 이제는 보이지가 않는다. 서운하다. 눈앞에 나타나면 방금 연습한 불꽃신공으로 빈대떡으로 만들어줄 나쁜 마음을 품었는데 아마도 이젠 독심술까지 하나보다. 이 녀석 벌써 다 빨아 먹었나?


내일 또 능욕을 당해야 하나?

먹이에 독을 뿌리는 건 어떨까. 그런데 그럴려면 일단 내가 먼저 독을 먹어야 하나?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괜찮은데 모기는 먹으면 죽어버리는 그 정도의 독을 피에 심어보는 방법은 어떨까? 일단 모기의 빨대에 꽂히는 아픔을 겪어야 하니 그건 또 별론거 같다.


전기가 흐르는 모기채든 뭐든 일단 녀석보다 손이 느리니 이 방법도 마땅찮다.


어쩌면 나, 이 오밤중에 이 녀석과 단 둘이 노는 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어차피 이 녀석이 다른 피도 아니고 내 피만 빨아먹는 거라면 물리는 일이 위험한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녀석의 빨대를 매일 소독한다면 더욱 위험한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녀석의 빨대를 어떻게 소독하지? 일단 녀석을 잡아서 빨대를 뽑아내서 알콜소독을 한다면? 빨대 잘못 뽑다 녀석이 골로 갈 수도 있고, 혹은 알콜 과다 섭취로 알콜에 중독될 수도 있다.


그래. 마지막 방법이다. 내가 온 몸으로 알콜을 흡입하면 자동으로 소독되는 거 아니겠어? 그럼 녀석이 빨대를 들이밀때 자동 소독이 되는 거겠지. 올뤠.


놀라운 발견이다.

이렇게 술을 마셔야 할 타당한 이유를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닐텐데.


모기에게 너무 빨렸나보다. 정신이 헤롱거린다.

헤롱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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