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주저리주저리

이 새벽에 뭐하는 짓인가. 나도 몰라. 그냥 이러고 싶어.

by 생각하는냥

잠깐 누워있다 눈을 뜨니 그새 새벽이다. 천장 등도 다 켜놓고 TV도 켜놓고 그대로 시간도둑을 맞았다.


시끄러워 TV를 끄고 나니 창밖으로 거친 빗소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늦은 밤 빗소리는 더없이 좋아라 하는 최적의 환경이다.


아, 설거지.

잠깐 아내 없이 지내다 보니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었다. 그냥 밖에서 밥을 사 먹을 걸 그랬나. 귀찮은 게 하나둘 쌓이더니 금세 산더미가 되었다. 저걸 언제 치우나. 내일이면 그분이 오 실 텐데.


제일 편하거나 혹은 제일 불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빗소리를 듣는 것도 최고의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문제는 듣다가 잘 거라는 거다. 그럼 저 쌓인 설거지거리는 그대로 방치가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며칠간 잔소리를 잔뜩 먹게 될 게다. 잔소리를 먹느냐 아니면 빗소리를 포기하느냐 고민이로다.


선택의 순간은 늘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동시에 선택한 하나로 인해 더 나은 삶을 가져오기도 한다. 설거지를 선택한다면 잔소리 없이 편안한 한 주를 보장받을 거라는 거다. 잠깐의 편안함보다 긴 평화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걸 언제 치우나 싶었는데 좋아라 하는 음악을 켜고 하나둘 치우다 보니 금세 해치워버렸다. 사실 금세는 아니었다. 손이 느리다고 매일 아내에게 타박받던 내가 이런 산더미를 금세 해치울 리 없지 않은가. 그냥 금세라고 우겨본다.


보통은 이런 오랜 설거지 노동을 하다 보면 짜증이 쌓일 법도 한데 별일이다. 얼마 전 바꾼 등 때문에 부엌이 은은해진 탓이었까? 분위기가 좋아지면 노동도 노동이 아닌 게 되는 걸까?


혹 침실 등도 바꾸면? 내가 지금 뭔 소릴 하나. 닥쳐라.


낮에 먹은 카페인 음료 탓인가? 아까 시간도둑까지 맞으며 그리 잘도 자더니만 왜 이제야 잠을 잊어버리나.


얼래. 어쩌다 보니 지금 눈을 붙이면 알람 소리가 아무리 울려도 못 일어날 각이다. 물론 지각은 당연한 결과가 되겠지.


사실 진즉 잠을 잤어야 했다. 이런 글 따위 쓸 틈에 잠을 자러 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이 글을 남기지 않으면 누워서 잠 못 자고 뒤척이는 것보다는 생산적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외롭지 않아서다.


결론도 없는 글은 그냥 낙서다. 그래 뭐 그게 어때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쓰면 되지. 이런 주저리주저리는 누구나 하는 거 아니던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데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형식에 맞춰 쓸 필요 있나. 더군다나 한 밤의 주저리주저리는 더없이 위로 아니던가. 글이 뭔지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쓰면서 위로받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아닌가? 아니면 말고.


물 한 모금에 글 한자 (사실 좀 주절주절 많지만) 적고 가니 두 눈 감으면 푹 잘 것 같다? 아악. 행복해.

지각을 하든지 말든지.

인사고과에 반영을 하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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