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빵 터지지 않았다.

어느 주말 긴박했던 상황

by 생각하는냥

지난 주말 이발하러 가기 전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에 담긴 국을 데웠다. 혹시라도 상할지도 모르니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데워야 한다는 미션을 부여받은지라 미션 수행 대장은 이를 완수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집 근처 남성 전용 미용실에 가서 자칭 이쁘장하게 머리를 싹둑하고는 점심 거리로 근처 식당에 들려 제육덮밥을 주문 포장하였다. 그리고 덤으로 간식거리로 먹을 빵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그렇게 아내 없는 하루를 나름 알차게 보내려고 준비물을 모두 세팅하던 중이었다. 문득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가 생각이 났다.


불을 껐던가?

불을 켜고 이발을 하러 나오기 직전 불을 꺼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없는 거다. 아뿔싸. 큰일이다.


불을 끄지 않았다면 그 센 불에 켜놨으니 이미 냄비가 불에 빨갛게 달궈져서 집안은 이미 시커먼 연기로 가득할 터. 옆집까지 이미 냄새가 넘어갔다면 이미 119가 출동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커다란 비닐 봉지를 들고 전력으로 뛰니 사람들이 신기해 한 번씩은 뭐하는 사람인지 바라봤을 것 같다. 이렇게 전력 질주해본 게 몇 년 만이던가.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니 심장이 터질 듯 숨이 차 올랐다.


집 근처는 평화로웠다. 먼저 냄새부터 맡았다. 타는 냄새라곤 연기 냄새라곤 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스레인지는 불이 꺼져 있었고 심지어는 중간 밸브까지 잠겨 있었다. 나가면서 불을 껐던 모양이다. 어찌 불 켠 기억은 선명한데 불을 끈 기억은 전혀 없을꼬.


다행이다 싶어 비닐을 열어보니 플라스틱 팩 안의 제육볶음은 밥과 잘 버무려져 비빔밥이 되어 있었고, 반찬 칸에 있던 단무지 병사 서넛은 플라스틱 팩을 탈출 시도하다 사망한 흔적만이 다급했던 전장의 상황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같은 칸에 합승해 있던 빵들은 빵 터지지 않아 다행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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