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민은 매우 소소한데서부터 시작한다
고민을 들어주는 일은 비교적 어렵진 않다.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짐은 이미 한결 가벼워진다. 맞장구치며 호응까지 해주면 더없이 좋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지적질이다.
"그건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 이런 말은 왜 하는 거야? 하지 말아야 할 걸 몰라서 그랬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건 사고란 블랙홀처럼 빨려든 다음에야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블랙홀만 없다면 세계 평화는 진즉에 이뤄졌겠지. 유토피아 만만세였겠지. 블랙홀에 빠질 땐 누구나 제정신이 아니다.
고민을 들어준다는 건 상대방의 징징거림을 참아가며 혀끝에서 간질간질 거리는 지적질까지 참아가며 화자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니 처음 생각과는 달리 어려운 일 같다. 듣다가 짜증도 나고 화도 나는 증상을 한 번쯤은 겪었던 게 문득 떠오르네. 아, 어려워 어려워.
그래도 어쩌랴.
당신에게 고민을 꺼낸다는 건 늪에 빠진 그에게 있어서는 마지막의 한가닥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에게 늪에 빠져 죽으라고 뿌리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그러니 참아주며 들어보자. 그게 그를 위한 최선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것만으로는 안될 때가 더러 있다.
화자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마디 조언이라도 해달라고 신호를 보내오는데 무작정 입을 닫고 있다가는 그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인질로 붙잡혀 있을 수도 있다. 집에는 일단 가야지 않겠나.
그래서 그에게 조언한다고 한 내뱉은 한 마디.
아뿔싸. 낭패다.
화자가 여태 말한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얘기라도 꺼냈다가는 욕부터 먹을 수도 있다. 게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답변을 했다가는 내 수준이 드러나고 만다.
아, 이렇게 고민 들어주는 일이 어려운 일이구나.
그런데 말이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그가 결정할 일이다. 그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렇지? 아니다 아니다. 그대가 혹시 부자라면 혹은 핸섬하다거나 또는 뷰티풀 하다면 대신 살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너의 고민을 접수할 테니 인생을 바꿔다오. 크크크크.
옆구리로 빠진 얘기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 얘기하면 고민을 말하는 화자의 진술은 상당히 주관적인 입장으로 진행된다. 곰곰이 듣고 있노라면 이미 결론까지 내린 것을 알 수 있다. 오호라. 그런데 어인 고민을 터는가? 그렇다. 알고 보면 뭐를 하려고 하는데 뭐가 걸려서 그런 탓이 크다. 이거를 하자니 뭐가 아쉽고 저걸 하자니 또 요게 아쉬운 그런 상황이다. 그놈 참 욕심도 많네. 그럼 둘 다 하든가.
알고 보면 이미 결정 다 내린 상태고 동조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어차피 최선의 선택이란 없다. 단지 선택과 결과만이 있을 뿐 최선의 선택이란 결과가 말해 줄 뿐이다. 게다가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던가.
짜장면과 짬뽕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짜장 먹고 나면 짬뽕 생각나고 짬뽕 먹고 나면 짜장 생각나는 것이다. 짜장 먹고 배고픔이 해결되면 짬뽕 생각은 아예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사람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고 매우 간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니 굳이 그에게 정답을 가르쳐주려고 머리를 쥐어 싸맬 일은 아닌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당긴다.
탕수육.
바삭바삭하게 먹는 찍먹도, 달콤한 소스에 깊게 발려져 쫀득한 부먹도.
오늘도 고민은 매우 소소한데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