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응원하던 야구팀 '해태'는 이제 없다. 기아로 고스란히 팀이 인수되기는 했지만 해태의 향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적 엄마가 해준 김밥 맛을 그 수많은 김밥 파라다이스가 똑같이 재현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 당시의 향수를 느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다 얼마 전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았다. 키움 vs SK 전이었는데 키움에서 뛰는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를 보며 다시금 심장이 뛰었다. 이정후가 뛰는 키움은 마치 과거 해태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 보였다. 몇 해 동안 야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그 몇 경기에 키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키움은 드디어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그러나 두산에게 4차전 모두 발렸다. 두산과의 박빙의 승부는 매번 결정적 장면에서 에러에 의해 갈려졌다. 키움은 두산에게 4연패를 당하고 너무도 쉽게 한국시리즈를 접어야만 했다. 편이 되기 전에는 지든 이기든 아무렇지 않았는데 편이 되고 보니 지는 모습에 괜히 가슴이 아프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문득.....
사람은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이 지는 모습을 당신 편이 바라봤을 때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본 적은 있나? 아마 응원하던 야구팀이 진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그렇지 않을까.
맞아.
내가 응원하던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처음엔 다독이고 격려하다가도 계속 지면 "그것도 못하냐"며 몹쓸 말을 던지거나 답답해하곤 했었지. 그런 행동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몸에 배여서 나중에는 별 일 아닌데도 싸우기까지 했었어.
묵묵히 응원한다는 게 말이 쉽지.
도인이거나 혹은 관심을 끊거나 하지 않으면 그렇게 쉽겠나.
아니다. 그러고 보니 한 분 계셨네. 그러고 보니 나의 무한한 긍정 팬이 있었네.
어머니.
속으로 애타 하셨는진 모르겠지만 늘 아무런 조건 없이 응원해주셨지. 무슨 일을 하든지 말끝마다 "파이팅이다"라고 그렇게 어떤 서운함이나 아쉬움에 대한 표현 없이 화내는 거 없이 늘 내 편이 되어주셨지.
그런데 이제 그런 어머니 같은 내 편은 세상에 없다. 묵묵하게 봐줄 이가 없다.
그러니까 내 편을 만들고 싶다면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 편이 속상해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음... 그런데 말이다.
난 내 편 없어도 좋으니 좀 게으르고 무덤덤하고 느긋한 그런 템포로 살아가고 싶다. 그냥 책상에 턱을 괴고 창문 너머 먼 곳을 멍 때리듯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말이다. 아주 잠시였지만 야구팀은 다시 응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고 속상하고 화내고 싶은 일을 줄이고 싶어서. 잠깐이지만 즐거웠다. 키움. 안녕.
그래도 이정후는 응원할란다. 못하면 화도 낼 거야. 내맘이야.
각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