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by 생각하는냥

지난 월요일 지끈거리는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하늘이 빙빙 돌았다. 체했나?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눈을 감아도 빙빙 돈다.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하니 체한 듯싶었는데 많이 아파본 사람만이 느끼는 경험치랄까? 뭔가 체한 거랑은 조금 달랐다.


이상하다 싶어 바로 병원으로 직행하니 의사 왈 '이석증'이란다.

이석증?

골뱅이관, 아니 달팽이관에서 칼슘 덩어리가 빠져나와 돌이 굴러 다녀서 생기는 거라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 골뱅이, 아니 달팽이관이 문제라는 건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주로 여자가 많이 걸린단다. 여자가. 여자가. 여자가? 오잉? 아, 난 남잔데. 예외는 있는 건가? 뭐 그리고 그리고 외부 충격이라든지 혹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네?


스트레스?

하여간에 이 녀석은 안 빠지는데 없이 싹 다 끼어든다. 오지랖도 이 놈만 한 녀석이 없다. 더군다나 의사 선생님들이 설명하기 가장 어려울 때 꼭 요놈 핑계를 댄다. 의사 선생님들에게는 동네북이고 환자인 우리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싫은 당신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수면효과가 있다는 약을 처방받아먹으니 하루 이틀을 헤롱헤롱 보내며 잠만 잘 잤다. 너무 잘 잔 탓인가? 내일의 잠까지 끌어다 자서 그랬나? 어제저녁 왜 그렇게 잠이 안 왔을꼬. 덕분에 오늘 아침 현관문을 5분이나 늦게 나서고 말았다.


5분이면 뛰어가지 않는 한은 지각이다. 5개 구간을 나누고 걸어서 2분이면 갈 거리를 뛰어서 1분에 주파하면 된다. 계산상으로는 그랬고 너무도 명확한 계획이었다. 절대 지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아뿔싸.

저질체력을 계획에 넣지 않았구나. 3개 구간까지는 어찌어찌해서 달렸는데 나머지 2개 구간에서는 체력이 달렸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이를 어째. 이것은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걸음으로 분주하게 뛰었다? 걸었다? 하였다.


겨우겨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5분의 여유가 있었다. 오예. 안정권에 진입하셨습니다.


그러나 변수는 안정권에 진입할 때 여지없이 발생한다.

엘리베이터 앞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온 삐리리가 느닷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닌가. 제일 민감한 55분에서 00분 사이의 시간에 말이다. "여보세요. 계단으로 가도 되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이내 삐리리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이 나포함 여럿 느껴졌다. 우리의 시선은 마치 어릴 적 돋보기로 고무 대야를 태웠던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럼에도 그 삐리리는 멀쩡하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 재수 떼기. 3년 동안 재수 옴 붙어라.


이내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층마다 버튼이 눌러졌다. 오늘도 그린라이트인가? 아, 난 내 허벅지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이렇게 달려왔건만 인생은 늘 가혹하단 말이야.


사무실에 들어가니 쫄깃쫄깃한 시간 09시 00분을 가리킨다. 이건 지각이여? 아니여? 뭐여?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밀린 업무를 해치우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허벅지가 너무 욱신거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산등성이 열개는 넘은 것 같이 허벅지 근육이 뭉쳐 있었다.


저질체력은 말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당당하게 지각을 하라고.

하후 종일 욱신거리는 허벅지가 머리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왜 너의 계획에 허벅지만 희생을 당한 거냐고.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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