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by 생각하는냥

잘 잔 것도 같은데 왜 알람이 안 울려? 일찍 일어난 걸까? 더 자 아님 말아.


날은 평소보다 어두운 걸로 보아 못해도 알람 울리기까지는 삼십 분은 더 자겠다 싶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더 자려고 하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눈을 감기는 했는데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해서 잠이 안 오는 거.


눈이 말했다. 넌 이미 다 잤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


그러자 몸이 말했다. 아 대체 몇 신데 그래. 좀만 더 자면 안 돼?


둘이 싸우자 그걸 지켜보며 때로는 주관적이지만 때로는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손이 아무 말 없이 움직여 휴대폰을 쥐어주어 눈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폰이 평소와 달리 차가웠다. 이것은 폰이 방전되어 있을 때의 차가움이랄까? 손바닥에서 느껴오던 촉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전원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화면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방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눈이 말했다. 어차피 일어나야 하잖아. 몇 신지는 확인해야 할 거 아냐.


몸이 말했다. 그래도 아직 어둡잖아.


눈이 말했다. 일단 폰 충전부터 하고 자든가 말든가 하면 안 될까? 너 며칠 전에 지각할 뻔해서 뛰느라 개고생 했잖아.


그러자 몸이 말했다. 아 맞다. 내 생각이 짧았어.


고단한 몸에게 기지개를 켜게 한 후 온몸으로 피가 쭉쭉 뻗어나가고 영혼에 기름칠을 하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휴대폰 전원을 꽂아두고 시간을 체크해보았다. 몇 신가 하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다. 전원을 켜자마자 알람이 울린 것이다.


몸이 눈에게 말했다. 알람 시간을 어떻게 알고 깬 거야? 너 진짜 무섭다.


눈이 몸에게 말했다. 내가 쫌.



가끔 감이라는 게 꽤 잘 맞아떨어지는 그런 날이 있다. 별 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그날은 뭔가 신기하고 재밌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든 사람은 대체 어떻게 만든 것일까? 아무리 과학적으로 만든다고는 하더라도 이리도 동물적으로 감각적으로도 일치할 수 있을까. 시간이야 그렇다 쳐도 몸은 어떻게 24시간을 감지하고 딱 맞출 수 있는 걸까. 그냥 우연이라고 돌려 말하기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며칠 전 전주역에서 상경하는 기차를 기다리며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무슨 생각에선지 자석 같은 끌림에 이끌려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가끔 영화를 보면 화면이 또렷이 선명해지면서 클로즈업되는 효과 같은 거 있지 않던가. 조금 과장해서 보태어 그런 효과가 눈 앞에 일어나며 평소 알고 지내왔던 것 같은 사람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이 들며 하마터면 본능적으로 인사부터 할 뻔했다.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유시민 작가님이 떡 하니 눈 앞에 서 계신 게 아니던가. 전주 일정이 있어서 오셨다가 상경하시는 모양이었다.


사인이라도 받아야 할까? 아차. 종이가 없다. 그렇다고 폰으로? 같이 사진이라도 찍자고? 아서라. 일정을 마치고 가시는 거라면 피곤하실 텐데 괜히 귀찮게 해 드리는 거 같아 어쩌지는 못했다.


괜히 예쁜 보석이라도 예쁜 꽃이라도 보듯 한번 보고 또 보고 또 보고를 반복. 눈치채셨나?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시야 밖으로.


'작가님, 저 그런 사람 아니어요.'


그냥 사인받을 걸.



감이라는 게 제 아무리 좋아도 몸이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알림 없이 제시간에 눈을 든 다한들 몸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인 게고, 제 아무리 평소에 존경하던 분을 뵙는다 하더라도 사인 하나 안 받으면 끝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데 감만 좋고 몸은 꽤 구리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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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5일 아침 8시 35분경 해가 뜬 하늘은 마치 하루를 벌써 마감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나랑 같이 퇴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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