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언어

언제나 늘 뜨뜻하다.

by 생각하는냥

고기를 사시겠다는 팔순 아버지를 모시고 마트에 들렸다. 고기를 사서는 직원에게 가시더니 비닐을 찾으셨다.


"어떤 용도로 쓰시게요? 쓰레기봉투요?"


직원은 손에 든 고기를 담아가려는 줄 알고 쓰레기봉투를 주려고 하였다.


"아니, 그냥 비닐 없냐고"

"일반 비닐 드리면 법에 걸려서 안돼요. 쓰레기봉투 드릴게요."

"거 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비닐 말이야 그냥 비닐."


최근 마트에 가면 야채를 담아가라고 놓은 비닐마저 사용이 금지되었다며 주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변화에 익숙지 않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셨던 모양이다. 언성이 높아지니 직원 표정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비닐은 왜 찾으시는 걸까? 아들조차도 사용 용도를 모르는데 직원인들 어쩌겠나. 그래서 직원을 향해 연로하신 아버지니 이해해달라는 무언의 미소를 날렸다. 다행히 직원도 그 무언의 미소가 무엇을 말하는지 안 듯 씩 웃으며 그냥 넘겨주었다. 아버지가 가끔 이런 식으로 언성을 높이실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물어보다 대화는 통하지 않고 오히려 좋지 않은 소리만 듣게 되니.


"안 파나 봐요. 그냥 계산할게요." 하고는 아버지를 모시고 부랴부랴 나왔다.


밖에 나오니 옆에 잡화점이 보였다. 잡화점을 보시더니 안으로 들어가셔서는 이번에는 비닐이랑 믹서기 작은 거를 찾으셨다.


"믹서기 작은 거요? 그거는 안쪽에 있어요. 저 따라오세요."


그리곤 안쪽으로 안내하여 들어갔다.


"자 이거 있고요, 이것도 있고요. 어떤 거 찾으세요?"

"가만히 있어봐. 좀 보려고 그래. 좀 보고 나서 인터넷에서 사려고."


'에?' 이건 아들이 놀래는 소리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직원에게 대놓고 여기서 안 산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 구경만 하고 인터넷에서 산다고? 인터넷에서? 인터넷, 인터... 뭐라고?

뻘쭘한 직원의 얼굴에서 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버지, 제가 사드릴게요. 그냥 여기서 사세요."

"아니다. 됐다. 비닐 보러 가자."


더 안쪽으로 들어가신 아버지는 아까부터 사신다는 비닐을 찾아 두리번거리셨다. 그리곤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뻐하시며 "그래 이거". 비닐 롤백이었다. 그냥 그거면 그거라면 말씀하시면 진즉 알아차렸을 텐데 팔순 노인의 언어는 표현이 서투르니 목소리가 높아진다. 마치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가 말로 표현을 못하니 징징거리는 것 같이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아기 때는 징징거림으로 언어를 말한다. 그리고 말을 배우게 되며 아이의 언어에서 성인의 언어로 변한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다. 노인의 언어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그들이 언성이 높은 것은 젊었을 때만큼 화려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투자한 반의 반만큼 만이라도 노인의 언어에 투자를 했더라면 아버지하고의 소통도 쉬웠을 거라는 걸.


그래도 말이다. 여전히 아버지랑은 소통이 쉽지는 않을게다. 부자지간이 뭐 원래 그렇지 아니한가. 그래도 상경하는 아들의 가방에 사과 한 봉지를 넣어주신다. 노인의 언어의 온도는 언제나 늘 뜨뜻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