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사람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놀이인지 벌칙인지 모를 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앞으로 뒤로 이름이 불려지다 어떤 룰에 의해 걸리게 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러야 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내가 앉은 줄 맨 앞에서부터 뒤쪽으로 한 사람씩 호명이 되고 있었다. 마치 죽음의 카운트다운처럼 말이다.
바로 내 앞까지 순서가 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순간이었다. 다음번 불려지면 벌칙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순번은 다행히 옆줄로 넘어가며 다른 친구가 당첨되었다. 그는 노래를 꽤 잘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친구가 멋지게 부르는 동안 게임을 마치지 못한 긴장한 자의 귀에는 노래가 들어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며 후드티 모자를 눌러써버렸다. 그러나 자포자기 순간 늘 당첨이 된다는 인생의 법칙을 왜 몰랐을까.
벌칙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벌칙을 당하는 자의 쫄깃한 심장 덕에 무슨 노래를 불었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벌칙을 마친 자의 마음은 홀가분해진다는 것이다.
다음 순번을 호명해야 해서 마지막 남은 옆 분단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쁜 애가 없다. 그리고 잘 생긴 애도 없다. 그래도 꿈속인데 캐스팅이 왜 이 모양인 거냐.
그렇게 투정할 찰나 잠이 깨었다.
뜬 눈을 굴려가며 아리송한 꿈 내용에 멍을 때리다 문득 깨닫는다. 아, 알람.
폰을 잡으니 차갑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자기 전 앱 하나를 실행해놓고 끈다는 것이 그냥 자버렸던 게다. 그리고 그 앱은 어김없이 배터리를 바닥까지 맛있게 잡아먹어버렸다. 하필이면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가야 하는 오늘 같은 날 꼭 그렇게 먹어야만 했니.
시간을 알 수 없어 바로 일어나 전원 잭을 연결하고는 전원을 켰다.
와우. 퍼펙트.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을 깬 것이다.
더듬이가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는가 보다. 보통 더듬이는 습관에 의존한다. 그래서 평소 길들여진대로 늘 일어나던 시간에 깨는 게 정상인데 30분 일찍 일어나야 하는 오늘 같은 날 어찌 알고 30분 일찍 일어났을꼬.
자는 내내 더듬이는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꿈속에서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그리 열심히 세고 있었고 그래서 벌칙에 당첨되는 순간 가슴이 쫄깃해졌으며 그래서 꿈속에서 그만 헤어 나오라고 이쁜 애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나 보다.
어서 가자.
거리에서 마주친 젊은 처자는 서로의 눈이 마주쳤음에도 거한 하품을 하염없이 뿜어댄다.
지하철 바로 앞 빈자리에 앉으려니 코뿔소 같은 아주머니가 인파를 뚫고 들어와 자리를 낚아채간다.
어렵사리 앉으니 옆자리 또 다른 처자는 화장품을 열고 치장을 하느라 정신없다.
사람들은 각자의 우주만을 신경 쓴다. 나 이외의 우주와 상충되어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부서짐 없이 잘만 굴러다닌다. 나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 서로 열심이다.
각자의 소소한 하루는 그렇게 만들어져 가고 흘러간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아 주라. 개꿈일망정 꿈에 취하고 각자의 우주가 제멋대로 굴러가도 소소하게 흘러가는 이 하루가 좋다고 나의 더듬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