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야

위내시경

by 생각하는냥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살짝 긴장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긴장하냐 싶기도 하지만 태생이 그리 태어났고 그렇게 길러진 것을 어쩌랴. 별 거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일이니 긴장 타는 것도 내 맘이다.


'위내시경'

원래 진작에 했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까지의 건강검진 동안 걸렀다. 사실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두 가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검사를 했는데 암이라도 판명되면 어쩌냐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검사하다가 내시경에 타인의 세균이 타고 넘어오면 어쩌냐 싶은 거였다. 영화 보면 미세한 세균이 타고 넘어와 정신을 빼앗긴다거나 하는 가당치 않은 상상 말이다. (ㅋㅋ)


전자의 경우는 먼저 보험을 들어야 했는데 막상 건강검진을 하려고 작심할 때면 이미 12월이 코앞인데 보험 암 진단은 최소 3개월 이전에 가입을 해야 한다 했다. 이왕에 암 판정받는데 보험금이라도 타면 덜 우울하잖아.


후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헬리코박터균이라는 게 미세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소독을 잘한다 치더라도 현대 의학이 알아내지 못한 어떤 또 다른 균이 타고 넘어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현대 의학이 알아내지 못한 것도 많은 건 사실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영화를 봐도 너무 많이 보긴 했다.


정말이지 이 두 가지 이유를 다 따져보면 내가 생각하더라도 너무 어설퍼서 기우에 지나지 않는 거라는 정도는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쩌냐. '내 태생이 그러한 것을.'


그럼에도 걱정 떨쳐내고 올해는 위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하기로 작심하니 이제는 방법이 문제였다.


수면이냐 비수면이냐.


수면을 하면 방언이 터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혹여라도 음담패설이라든지 욕설을 내뱉기라도 하면 어쩌냐. 그래도 인격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비수면으로 하면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서. 주변의 누군가는 5분이면 끝난다 하고 누군가는 2-3분이면 끝난다고 하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누군가는 했으니까 하다가 죽기야 하겠어. 하다가 죽은 사람 못 들은 거 같다. 있다 하더라도 매우 희박하지 않겠나. 결국 비수면으로 결정을 내렸다. 죽기야 하겠냐고.


그런데 하필이면 건강검진을 하는 날 콧물감기다. 게다가 아침부터 겨울비다.

어찌 이리도 시기적절할 수 있단 말인가. 최악의 컨디션과 최악의 상황에서 하필이면 그리도 긴장했던 위내시경을 해야만 하다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 정말 이건 여러 번 하는 말이긴 한데 '최소한 조물주는 내 편이 아니다. 나쁜 XX.'


위내시경 검진 탓에 12시간이나 음식을 먹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병원 가는 길이 왜 이리도 험난하냐. 겨울비까지 오는데 길거리 음식은 무지막지 잔인한 장애물이었다. 어묵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라든지 빨갛게 잘 버무려진 떡볶이라든지 한입 베어 먹으면 아삭아삭 빠삭빠삭할 것 같은 튀김이라든지 너무도 잔인하지 않은가. 하나를 지나치면 또 다른 장애물이 나왔다. 검사가 끝나면 저 무자비한 것들을 반드시 토벌하리라.


병원에 들어서서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위내시경 코너로 들어섰다. 8번째였다.


순서가 아닌데 호명이 되어 액체로 된 위약 같은 걸 먹으라 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더 먹어도 될 정도로. 12시간 이상 굶었더니 맛은 그냥 그랬지만 한 포 더 주면 고마울 것 같았다. 더 안주나?


좀 더 기다리니 전광판의 번호가 내 순서가 아니었는데 다시 호명이 되어 비어있는 검사실로 끌려(?) 들어갔다. 비수면이라 몇 명을 제치고 더 빨리 순서가 온 듯 싶었다. 안에는 두 명의 어여쁜 간호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스)


눕기 전에 입안에 뭔가를 찍찍 뿌려댔다. 마취제란다. 일단 겁나 쓴데 싸한 맛도 나는 듯 싶었다. 배고파서 그런지 이 쓴 것도 더 뿌려주면 꿀꺽 삼킬 것 같았다.


삼키고 나니 혀 안쪽과 더불어 목 안쪽이 마비가 되어오는 듯한 느낌이 서서히 들었다. 그리고 내시경을 깨물지 못하게 입에 자그마한 관을 미리 깨물게 했다. 이건 뭐 강아지도 아닌데 순한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옆으로 누워 자세를 취하니 의사 선생님이 바로 들어오시고는 만지작 거리던 내시경을 '들어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입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부분 마취 덕분에 목에서의 이물감이 덜했다. 그래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웩웩' 거리며 순간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있던 손이 절로 위로 올라와 내시경을 잡을 뻔했다. 그러자 어여쁜 간호사 두 분이 팔을 잡고는 '안된다' 하셨다. (내가 또 이쁜 사람 말은 잘 듣잖아.) 손을 금세 다시 내리니 호흡을 하라고 하는 거다. 배로 숨을 들이마셨다 뿜었다 하니 아까의 이물감은 금세 사라지며 편안해졌다.


두 눈을 감은 채 그때부터 카운트에 들어갔다. 그래 2-3분이면 끝난다고 하니 최대 150까지 쉬면 그 사이에 끝나겠지 싶었다. '하나 둘 셋 넷..... ' 어느새 다 세냐. 짧은 데 길게 느껴진다는 말이 뭔지 알 거 같은 시간이었다. 세다가 뱃속의 어느 지점에선가 내시경이 꿈틀대며 서서히 메슥거림이 올라오려고 할 즈음 '사십팔' 밖에 세지 않았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 왈 '다 끝났어요' 하는 것이다.


뭐야. 이렇게나 빨리?


걱정한 정도에 비하면 위내시경은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그리고 걱정과는 다르게 정말 별 게 없었다. 결과도 깨끗해서 다음에 정기적으로 위내시경을 하면 된다는 거였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난 뭘 걱정했던 걸까.


주의사항으로는 마취가 풀리기 1-2시간 전까지는 음식물을 취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혹시라도 마취가 풀리기 전에 폐로 음식물이 들어가게 되면 기흉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라? 토벌 못하는가?


사무실로 가는 동안 또 한 떼의 어묵 부대, 떡볶이 부대, 튀김 부대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난타를 당해야만 했다. 위내시경보다 더 무서운 적을 이렇게 길거리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이 무서운 주의사항을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준 거냐.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적이 찾아온다.

역시나 조물주는 내 편이 아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감기는 여전히 진행이다.

감기니까 아프고

아프니까 중년인 미치도록 무자비한 하루가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하나 둘 셋 넷..... ' 이건 몇까지 카운트를 세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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