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 번은 좀 해주라.
#희망 #기회
돈은 있는데 애인은 없고 애인은 있는데 돈이 없던 그 옛날의 인생 룰은 오늘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갑자기 웬 돈타령, 애인 타령이 아니라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부족한" 그런 상황을 말하는 거다. 뜬금없는 돈, 애인 타령은 그냥 비유일 뿐이니 벌써부터 이야기의 옆길로 새면 안 된다.
희망은 간절해진다. 그런데 그 희망이란 녀석은 간절해질수록 도망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웃기는 녀석이다. 지가 무슨 술래도 아니고 말이다. 더 웃기는 건 간절함을 포기하는 순간 이 녀석은 무슨 게릴라 작전이라도 펼치듯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번갯불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뭐야. 이 녀석이 무슨 전자오락실 게임하나? 무슨 인생이 이따위야. 방심하고 있는 순간 때를 기다렸다는 듯 맞춰 나타나는 그 고약함은 대체 누구한테 배운 게냐. 조물주가 물려준 습성이니 그게 어디 가겠냐만은. 뭐 이딴 인생 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인생이 그렇지 뭐.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준비하고 쌓아놓는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나타나는 순간 기회니까 잡아야 한다. 그래서 하찮은 거라도 뭔가 몸에 익숙하게 길들여놓아야 한다. 기회라는 건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짧은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거 참 스릴 있네.
#2020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었다. 많은 일들이 주관적으로 객관적으로 회오리치듯 휩쓸고 지나간 한 해다. 설마 태풍이 더 오기야 하겠냐만은 지나간 태풍의 흔적은 많은 숙제를 두고 갔다.
채 21시간도 남지 않았다. 어릴 적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순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라고 어린 성가대 복장으로 찬송 부르며 동네를 헤집고 다녔었다. 그것도 이른 새벽에 말이다. 그땐 체력도 참 좋았다. 지금은 종교인도 아니지만 새벽에 어찌 일어나나.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있을 순 있는데 새벽에 깨는 짓은 못하겠더라. 발랑 까진 지금에 비하면 그땐 참 너무도 순수했다.
산상기도회를 한다며 눈 맞아가며 청바지 꽁꽁 얼어붙어가며 산 정상에 올라 기도회를 마치고 얼어붙은 우유와 빵을 먹었던 그때, 난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말이다. 심장에 용광로라도 달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산에 오르는 것조차 나랑은 상극이고 굳이 얼은 우유와 빵을 한 겨울날 눈 맞아가며 먹고 싶지도 않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이고, 삭신이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기도한다. 주제는 똑같다. '희망'이다.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그런 희망. 그놈의 소원이고 희망이고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다르지만 누구나 비슷한 그런 소원이다. 딱 하루만 지마녀 첫 태양과 함께 주문을 외우듯 희망이라는 녀석은 천지에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들이 이루어지지는 않을지라도 그래도 한 번쯤은 간절했던 시기가 있어줘야 한다. 간절했던 순간을 일단 조물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다 포기했을 때 기회란 녀석을 장난치듯 툭 던져줄 테니까. 그거마저 없으면 좀처럼 심술쟁이 조물주를 움직일 방법이 없다.
끄적끄적거려야겠다. 내일 아침엔 뭔가 리스트를 잔뜩 써서 애걸복걸 막무가내로 조물주님에게 들이대 봐야겠다. 협박이라도 해봐야겠다. 물론 잠 많은 인간은 새벽이 아닌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들이밀 것이다. 왜냐면 새벽시간대에는 인간들이 몰려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잔뜩 풀어댈 텐데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줄 틈이 있겠나. 다 가고 난 다음에 한가할 때 얘기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매년 반복되는 이 행사는 안된다는 거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해주겠지 싶은 기대감으로 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올해는 무슨 객기에선지 조물주에게 따져본다.
"야, 한 번은 좀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