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가 '고기오'로 발음 나오는 순간
그렇게 내려주길 바랬던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난 병원을 찾아 걸어야만 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눈이 내리는 날 서럽고 서럽게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아가고 있었으니 늘 하는 말이지만 조물주는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애써 증명이라도 해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참 나쁜 조물주님이다.
일요일이었던지라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연중무휴인 병원을 찾다 보니 낯선 병원으로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800미터 밖에 되지 않으니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금방 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눈이 내리는 데다 속까지 더부룩한데 몸살 기운까지 겹치니 평소 같으면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빙빙 돌아 헤매기까지 하여 40분씩이나 걸렸다. 잘못된 약도로 인해 길을 잘못 들어 더 걸렸다. 그것도 눈이 내리는 날 말이다. 진짜 사람 서럽게 만드시는 조물주님이다.
병원에 겨우 도착하니 지쳐버렸다. 게다가 순서를 기다리자니 메스꺼움 때문에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어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메스꺼움을 버텨내기는 하는데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를 속으로 몇십 번이나 주문 외우듯 외우다 보니 겨우 진료 순서가 되었다. 증상을 말하니 독감 검사를 해보겠냐는 말에 하겠다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15분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아, 주사 한 방이나 좀 빨리 놔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또 한참을 기다렸다. 15분이 이리도 긴 시간이었나? 시간을 따로 재지는 않았지만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어찌나 괴롭던지 대기실 소파에 드러눕고 싶은 걸 수십 번이나 참았다.
드디어 다시 이름이 불렸다. 검사 결과는 'A형 독감'이란다. 자, 이제 주사를 놔주란 말이다. 그런데 약만 처방을 해주려는 게다. 너무 급한 나머지 '혹시 링거는 안 놔주시나요?'라고 물었다. 매우 불쌍하고 애처로운 병든 닭이 다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꼬끼오'를 '고기오'로 외치듯 그런 톤으로 물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무조건 간호사의 뒤를 졸졸 따라 어딘가로 들어갔다. 아싸, 눈앞에 드디어 침대가 보였다. 모든 힘듬이 싹 다 사라지며 온몸의 평화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침대에 드러눕는 순간 이런 강 같은 평화가 있을 수 있나. 링거를 꽂으니 메스꺼움도 금세 사라지고 몸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잠이 솔솔 올 거라 생각했는데 피곤은 하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다만 꽤 편안해졌다. 언제 아팠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좋아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아내가 독감에 걸린 듯 링거를 맞으러 들어온 것이었다. 그녀는 꽤 열이 높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 아, 아, 아아아, 아아아, 오오빠아, 아, 아아, 아아아........"
분명히 아파서 하는 소리라는 건 알겠는데 그녀의 소리는 교성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목소리였다. 아니, 아플 땐 그렇게 소리 내면 아니 되어요. 좀 더 아픈 소리를 내야지 교성을 내는 건 실례예요. 아픈 사람끼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의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거 못 느끼시나요?
간호사가 몸이 좋지 않으면 비상벨을 누르라고 했는데 눌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부르기도 뭣하고 아픈 사람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소리를 즐기자니 변태 같고 참 한 순간도 편안하게 해 주지를 않아요.
그런데 말이다. 한 시간이 지나고 링거 다 맞았다고 간호사 언니가 들어오시는데 '좀 더 누워 있다 가면 안 되나요'라고 묻고 싶은 욕구는 대체 무엇인 게냐.
"저 이제 가도 되나요?"
"네"
좀 더 누워있다 가라고 하길 바랬건만 정말 간호사 언니 참 나쁘다. 병원을 나서는 게 싫은 순간도 있을 수가 있는 게구나. 나 아픈 거 맞지?
건물 밖에 나오니 이미 눈은 그치고 해가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