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고 있을래

연휴 뒤의 업무일을 하루 더 휴일로 준다면

by 생각하는냥

머리가 백지장이 된 것처럼 멍하다.


연휴 동안의 피곤은 고스란히 출근길로 이어진다. 벌써 출근 둘째 날인데.


고향집에서는 아내 따라 부엌에서 열심히 삽질을 하다 보니 한 건 많은데 뭘 했는지 모를 시간으로 피곤을 키우더니 처가에서는 할 일 없이 방바닥을 뒹굴러 다니느라 보낸 시간으로 피곤을 키웠다.


출근하자마자 이어진 회의는 빈 깡통 안의 요란한 동전처럼 시끄러울 뿐 아무것도 담아내지는 못 했다. 누가 입을 열 때마다 머리는 말한다. 누가 뭐라 해대나. 집어 치라. 연휴 뒤 회의는 절대적으로 반칙이다.


처갓집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밤샘하며 본 영화는 다음 날 지상파에서 밤새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수많은 광고까지 덤으로 방송해준다. 난 왜 밤을 새웠지? 지상파 편성자와 케이블 편성자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형제 사이는 아닐까, 혹은 친구 사이는 아닐까. 그냥 우연히 둘이 겹친 것뿐일까. 그래 둘이 인연이다. 운명이다. 결혼해라. 딴따라따안 딴따라따안.


믿었던 지브리 스튜디오마저 피로 돋게 한다.

'이웃의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가 줄줄 알았던 그들의 신작 '니노쿠니'는 왜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가. 지브리의 작품은 애나 어른 모두에게 동화 같은 감성을 가져다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작품엔 그림체 빼고는 지브리의 향기가 없다. 낯설다. 이렇게 만들 바에 차라리 기존 작품을 리메이크하던가 하지. 아니다. 이 상태로는 리메이크했다면 기존의 작품을 해쳤을 게 분명하다.


방바닥을 뒹굴다 보면 드러누워 있으면 알아서 가져다주시던 어머니의 명절 음식이 그립다. 이제는 받아먹을 수 없게 되어 더 그립다. 어머니의 손으로 만들어진 식혜가 금방이라도 한 사발 나올 것만 같은데 그 시절의 추억들은 아스라이 아버지의 주름들 사이로 숨는다. 그 식혜 한 방이면 피로가 잡힐 것도 같은데 말이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면 전염병에 걸려도 좋다던 시절이 있었다. 옛 추억의 그 중2병이 돋기라도 한 걸까? 지난주 독감 덕에 이틀을 날로 먹었더니 더 먹고 싶어 진다. 꿀꺽.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달콤할수록 더욱.


머리가 멍하다.

독감약의 여파일까, 아니면 위에서 열거한 피로들의 여파일까,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이제야 안 것일까. 수요일인데 벌써 주말이 오기를 기다린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늘 주말 오기부터 기다렸었다. 그 습관마저 쳇바퀴 돌 듯 일상처럼 멍하게 돌다 보니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아, 난 원래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더 그런가?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하루다. 연휴 뒤 이틀째 업무일이다.

연휴 뒤 업무일을 하루 더 휴일로 준다면 아마도 난 그 회사에 뼈도 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회사가 없으니 다행이다. 뼈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나 그냥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있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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