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퇴근해라 이것들아
간장을 사 오라는 밀명을 받고 마트를 향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간장만 사야지.'
분명 갈 땐 리스트를 적어서 가는데 나올 땐 왜 양손 가득일까. 더군다나 이번엔 간장 하나만 사면 되는 단순한 숙제였다. 그런데 나올 때 정신을 차려보니 장바구니엔 참치캔, 우유, 빵, 오이 등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내일 모래가 화이트데이인데 토요일이라서 금요일인 내일 여직원들에게 줄 초콜릿을 한가득 사고 만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이라고 하더니 팔이 고생이다.
'아이고 무거워라.'
집에 도착하면 보나 마나 뭘 그리 많이 샀냐는 융단폭격을 맞을 게 뻔했다.
낑낑거리며 힘겹게 현관까지 간 다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문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용히 열고는
'나 왔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방에 터질듯한 장바구니를 숨겨놓곤 간장만 쏙 꺼내 아내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다시 작은방에 몰래 들어가서는 텅 비어있던 남자화장품 박스를 찾아 꺼내 들곤 그 안에 초콜릿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아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자 여기 선물이야'
왜 남자화장품을 자기한테 주냐며 뚜껑을 여는데 초콜릿이 한가득이니 입술이 찢어질 듯 좋아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반응까지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싸, 가오리.'
초콜릿 몇 개를 뜯어먹더니 뭘 사온 거냐며 작은방의 장바구니를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않고 다시 안방으로 갔다. 선행 작업이 없었더라면 저녁을 못 얻어먹을 뻔했다.
다음 날 아침 가방에 초콜릿을 가득 채워서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여직원들에게 초콜릿을 뿌렸다. 13일에 받으니 예상치 못한 선물에 다들 좋아라 했다. 어떤 직원은 '감동이에요'라며 찬사까지 하는데 아마도 그건 나 들으란 얘기가 아니고 다른 남자 직원들도 빨리 상납을 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오늘 난 남자 직원들의 욕받이가 되어야만 했다. 왜 혼자만 해가지고 초콜릿 내놓으란 말을 들어야 하냐며.
사실 나도 해주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고 마침 아내가 간장을 사 오라고 했을 뿐이고 그리고 쇼핑중독이 불러온 충동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화이트데이가 떠오른 것이다. 평소 생각하고 사온 게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2월 밸런타인데이에 받아먹은 게 있으니 해줘야 한다는 1개월 전의 착하니즘까지 발동하여 나도 모르게 그만 충동질 구매를 하게 된 것인데 어쩌란 말인 게냐.
그래서 니들도 먹으라고 탕비실에 초콜릿 두지 않았더냐.
어서 퇴근해라. 이것들아.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