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을 숨기는 즐거움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을 향했다. 결제를 하고는 식판을 집으러 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의 손소독제로 시선이 향했다.
요즘이 어떤 시국인가. 손 소독이 중요한 시국 아닌가. 코땡땡19 라는 병명은 이제 더 이상 거론하기도 싫다. 글마다 코땡땡19 코땡땡19로 도배되어 있으니 병명을 적는 것도 지겹다. 게다가 지가 뭐라고 뒤에 감히 19를 붙여서 마치 성인영화라도 되는 듯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그래도 18이 아닌 19가 붙어 다행이지 않은가. 18이 붙었더라면 자칫 욕설로 오인하여 시비가 붙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쨌든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손 소독을 하러 입구로 갔다. 소독제를 손에 발라 비빈 후 다시 식판이 쌓인 곳으로 향하는데 카운터에 있던 아가씨가 나를 부르더니 결제하셨냐고 되물어보는 게 아닌가. 아니, 방금 전에 눈까지 마주치며 하지 않았던가.
"아까 했는데요?"라며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니 아가씨도 민망한 듯 그냥 보내준다.
가끔 나란 존재가 그렇다. 간단히 말해 존재감이 없다.
머리스타일이 평범하고 옷 입는 스타일도 평범하고 키도 평범해서 사람들 속에서 나란 존재감이 없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리 살아와서 이런 삶이 익숙하다. 눈에 띄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금세 기억되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학창 시절로부터 기인했는지도 모르겠다. 국어시간이든 영어시간이든 선생님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책을 읽을 사람을 찾는다. 일단 눈이 마주치면 안 되니까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주변과 엇비슷해 보여야 한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시선을 하고 비슷한 앉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머리스타일도 엇비슷하고 옷도 띄지 말아야 한다. 빨간 계통은 쥐약이다.
그렇게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오랫동안 습관 들여왔다. 그래서 그런 건지 결국엔 존재감이 없다. 단점일 것 같지? 실은 장점이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생각이 없어진다. 주변 신경을 덜 쓰게 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존재감이 없으면 실수를 하더라도 딱히 과하게 받아들여지는 법이 없다.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고로 그 어느 누구보다 마음의 평화가 빨리 온다. 존재감을 숨기는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남들과 같이 평범해져서 존재감을 숨기는 게 가끔은 고려해보아야 한다. 어느 날부턴가 또래들과 비슷해지려고 절로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많이 먹지 않아도 나온다. 인체의 신비다. 존재감이 없어지는 걸 꺼리지는 않는데 돈도 아니고 뱃살만 늘어난다. 누군가는 인격이라는데 인격 나빠지고 싶어 진다. 오 마이 갓.
그래도 글 쓰는 것만큼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 글은 일단 얼굴을 딱히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글로만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게 재미있다. 그래서 남들 다 잘 이 시간에 지금의 이 글질을 하고 있는가 보다.
3월 20일 오후 1시 30분,
서서히 나도 눈이 감겨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