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쥐어 잡고 놔주지 않을 테야.
정신이 가출한 날이었다.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겠는 그런 날이었다.
대개는 메모를 남기듯 적는 개인 밴드가 있다. 그곳에서 나의 글은 탄생된다. 메모하듯 쭉쭉 써 내려간 다음 읽어 내려가며 간단한 글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 맞춤법 검사기를 통과시켜 뾰로롱 하고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요즘은 메모장에 먼저 적은 다음 그 공간에 글을 저장하곤 한다.
오늘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에피소드 하나를 메모장에 적어 나갔다.
그런 와중에 뭐 할라치면 잘못 걸린 전화가 오는가 하면 뭐 할라치면 대표님이 부르고 뭐 할라치면 또 전화가 오고. 뭐만 하려고 하면 그 타이밍에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니 정신이 가출할 만도 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메모장에 적었는데 문제는 퇴근할 무렵이었다. 다들 퇴근을 하고 나 또한 글을 잘 마무리 지었다 생각하던 찰나 집에서는 언제 오냐며 전화가 오는 동시에 업무 마무리 지으려던 찰나 문제가 하나 해결이 되지 못해 정신이 팔려 있었다. 결국 해당 문제는 내일 처리하기로 하고 급하게 컴퓨터 전원을 끄고 봄날이지만 여전히 차가운 저녁 봄바람을 맞아가며 집으로 향하였다.
찬 바람을 쐬고 나면 금세 나른해지는 몸뚱이 덕분에 초저녁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느새 스르르 잠에 빠져 들다가 때 아닌 이른 새벽시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남들은 꿈나라 여행 갈 시간에 꿈에서 튕겨져 나온 이 버그를 어이할꼬.
문득 어제 쓰다만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 글을 수정하려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응? 응? 응?
글이 없다.
아뿔싸.
메모장에 글을 적고는 어이없게도 밴드에 글을 저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난감하네.
아이고야.
이를 어째.
난감하네.
결국 그 에피소드는 뒤로 하고 요 에피소드로 대체하고 만다.
정신이 가출한 날에는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있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이 지푸라기 같은 글이라도 나의 정신을 붙들어준다며 꼭 쥐어 잡고 놔주지 않을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