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일이나 회사일이나
단지 외식일 뿐이었다.
가끔 지나쳐 갔던 곳이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가고 싶어 했고 역시나 나의 뱃속도 격하게 동의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뷔페집으로의 출정식을 알리는 소리가 뱃속에서 꼬르륵꼬르륵 울려 퍼져 나갔다.
바깥으로 나오니 이게 날씨가 대체 뭔가.
여태껏 봄날이라고 우기기는 하였으나 차디찬 바람에 초겨울 같던 봄이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그 차갑던 바람은 어디로 사라지고 누가 대형 건조기라도 틀어놓은 듯 온풍이 불어온다. 게다가 햇볕으로 잘 데워진 보도블록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마치 초여름을 연상케 했다.
이전의 봄날은 초겨울 같더니 요즘의 봄날은 봄날이라기엔 너무 더운 초여름 같다. 봄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이젠 그 말을 바꿔야겠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현관문 정도로.
날씨야 그러든지 말든지 어느덧 우리의 배를 채워줄 초밥 롤&샐러드 바의 문을 화들짝 열고 들어섰다. 눈 앞에 펼쳐진 현란한 색상의 수많은 초밥과 샐러드, 그리고 잘 다져진 고기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아니구나. 실은 그 반대로 우리가 그들을 보며 심장 터지듯 환장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와 난 각자의 방식대로 음식을 덜어왔다.
첫 번째 접시에는 주로 야채 위주로, 두 번째 접시에는 주로 고기 위주로 담아왔다. 국물 종류는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으니 가급적 배제한 채. 그럼에도 국수는 예외다. 최애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맞은편에 앉은 아내의 접시에는 여러 가지 초밥들이 형형색색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초밥도 먹는 순서가 있다며 깨알 같은 정보를 알려주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흰 살에서 빨간 살의 순서로 먹어야 한다나? 그리고 초밥집에 왔으니 초밥은 먹고 가야지 않겠냐며. 귀를 기울이지 말 걸 그랬다. 귀담아듣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불상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음번 접시에 먹고 싶은 초밥 몇 개만 가지고 왔었어야 했는데 종류별로 하나씩 거의 다 챙겨 온 것이다. 접시에 담을 땐 아무 생각 없었고 뿌듯했는데 막상 서서히 불러오는 배가 더 이상 업무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파업을 선언했다. 꼬르륵 소리를 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파업을 하겠다니 너무 하는 거 아니냐며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이내 파업은 순간 진압이 되고 초밥은 잘도 들어갔다.
사람의 식탐이란 강아지가 '간식'을 보고 흥분을 하는 거랑 크게 다를 건 없는 듯싶다.
파업이 강제 진압된 이후 잘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서서히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장 운동이 썩 좋지 않았던 요즘이었던 터라 소화불량으로 인한 체기가 생긴 것이다. 늦은 점심으로 먹었지만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소화불량이 이어져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다. 피곤해서 잠은 오는데 소화불량 때문에 더부룩해서 잠을 잘 수 없는 고문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 미련 곰탱이 같으니. 그리 좋아하는 초밥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내 그럴 줄 알았라라는 아내의 핀잔은 후식이자 야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 왠지 너무 익숙하다. 어디선가 많이 당한 상황인데. 회사일? 아하.
가만 보니 먹는 일이나 회사일이나 비슷한 점이 보인다.
실무진이 업무 과부하 라든지 인력 보충을 요구하는 신호를 보냄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터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무리한 강요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렇게 된 것 중에 잘 되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일단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뭔가를 먹더라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 소화불량 될 걸 뻔히 알면서 먹으면 체하기 밖에 더하겠어. 실패는 그런 패턴으로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약을 먹고 나아지듯 프로젝트 마무리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실무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단함과 피로감이 뒤엉킨 프로젝트의 끝은 늘 좋지 않았던 듯싶다.
식사 마무리를 할 즈음 아내는 뷔페는 역시 별로다 라는 비수 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응? 초밥이 맛있다며 소화불량의 길로 이끌었던 건 대체 무엇이었단 말이더냐.
5월 3일 일요일 봄날 같지 않던 봄날은 하루를 그렇게 야금야금 먹어치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