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by 생각하는냥

금요일 저녁 뜻밖의 혼밥이었다.


갑작스러운 혼밥에는 라면에 김밥이 제격이다. 그런데 막상 시키려니 불량한 소화기관이 이 녀석들을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메뉴가 '들깨 순두부'였다.


들깨의 고소함과 순두부의 부드러움이 목 넘김에 너무 좋았고 불량한 소화기관에도 부담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은 그들에게는 좋은 인연이었다. 그런데 장미에도 가시가 있지 않던가. 몰랐다. 순두부찌개에도 가시가 있다는 걸.


후후 불어 가며 먹다가 딱 한번 그냥 삼키고 말았는데 그 순간 너무 뜨거운 나머지 혀와 입천장이 서로 뒤엉켜 뜨거운 행위를 펼치고 말았고 순간 그걸 그대로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장면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애꿎은 목젖이 그만 화상을 입고 만 것이다.


찬물을 몇 번이고 들이켜 진정시켰다 생각했는데 퇴근길에 다시 목젖이 화끈거렸다. 이크. 근처에는 편의점도 없어 찬물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안양천 물을 들이켤 수도 없는 일.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목안이 시원해졌다가 내뱉으면 다시 화끈거렸다. 또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아이고 시원해' 다시 숨을 내뱉으면 '아이고 따가워'를 연발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진정이 되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게 이리도 시원한 행위였던가.


퇴근길 저녁 하늘에서 만난 깜빡이는 비행기는 평화롭기만 하다.

금요일 저녁의 혼밥이 이렇게 우울하고 불량한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굶을 것을.



다음날이었다.


아점부터 짜장을 먹자 한다.

지도 앱으로 근처의 중국집을 뒤적거리는데 특이한 이름의 중국집이 눈에 띄었다. '셰프의 면사무소?'.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먹으려던 짜장+짬뽕+탕수육 세트가 무려 15,000원이었다. 당장 전화를 걸어보니 배달은 하지 않는 집이라 포장만 가능하단다. 거리는 버스 2 정거장 사이인데 걸어서는 10분쯤 하는 거리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당장 선주문을 하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길을 나서니 봄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우산을 펴면 후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의 그렇지만 신발이 젖지 않을 만큼의 봄비였다. 이런 우수에 젖을 봄비를 맞아가며 짜장 배달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때 주문을 취소할 걸 그랬나?


음식점에 도착해서 결제를 하려는데 16,500원이라는 게다. 응? 15,000원 아니었냐 물으니 배달용기값이 붙어서 그렇다는 게다. 게다가 비가 계속 내리니 이걸 그대로 들고 걸어가면 면이 불어버릴 것 같아 마침 온 버스를 탔다. 1,450원 추가요.


그러니까 총가격은 17,950원이 나왔고 배달을 직접 했으니 이게 손해야 아니면 이득이야. 머리에서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아무래도 손해 쪽에 가깝다. 아 몰라, 맛만 있으면 되지 뭐.


그런데 말이다. 중국집 면은 정말 빨리 분다. 엄청 빨리 분다. 최대한 빨리 버스를 탔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왔는데 왜 면이 퉁퉁 불었을까. 그러니 맛은 안드로메다다. 나의 멘털도 함께 말이다.


같은 돈 내고 왜 내가 직접 배달을 다녀왔을까? 게다가 비를 맞아가면서까지 말이다. 난 뭘 한 거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저녁 시간이 다가오니 '빵에 모히또'를 먹자 한다.

빵은 냉장고에 있는 걸 알겠는데 모히또는 냉장고에 없지 않냐 물으니


"요 앞에 있지"

"요 앞? 어디?"

"편의점"

"편의점은 누가 가는데?"

"누가 하는 사람"


아, 날이 이렇게 불량스러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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