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군고구마의 껍질을 어렵사리 깠으니 이제 후후 불며 먹기만 하자.
<더킹:영원의 군주> 9화를 기다리며.
드라마'더킹'이 벌써 반이 끝났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이민호와 김고은 주연, 그리고 김은숙 작가라는 이슈만으로도 충분히 대작의 필이 충만하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간이 배지 않은 설익은 고깃덩어리처럼 로맨스는 로맨스대로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엇나가는 것 투성이었다.
평행세계를 건너간 황제 이곤(이민호 분)은 정태을(김고은 분)을 보자마자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한 나라의 황제라는 작자가 다른 세상으로 건너와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데 황제라고 주장하더니 사랑타령까지 한다. 그래도 황제라면 배운 사람일 텐데 설득부터 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배운 놈이 배운 놈 같지 않은 행동을 하니 처음부터 답답했다.
게다가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의 도입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의 드라마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만화 원작의 <궁>이 있었고 이승기의 <더킹 투하츠>가 있었으며 장나라의 <황후의 품격>이 있었다. 그들의 배경 설정은 철저히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국가였기에 그냥 가상의 현실에서의 드라마를 보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더킹 영원의 군주>는 다르다. 입헌군주제인 대한제국과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당연히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입헌군주제에서 넘어와 다이아몬드와 금덩이를 자기 마음대로 써대는 황제 이곤이 고울 리 없다. 입헌군주제라 하더라도 국민의 혈세 아니던가.
게다가 황제가 국민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참수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며 그가 한 일이라고는 내 나라 백성의 어선도 아니고 중국 어선을 구한답시고 전쟁을 일으킬 뻔하지 않았나. 일본의 기를 꺾어놨으니 칭찬해야 하나? 에이, 그건 아니지.
더군다나 평행세계 자체도 몰입에 방해가 된다. 대한제국에서 후손 없이 죽은 A가 있다 치자. 그럼 대한민국에서 A가 후손 B를 낳으면 B는 대한제국이란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잖아. 게다가 이 평행세계가 소현세자 때부터 생겨났다고 하니 무려 400년 동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텐데 동일 인물이 산다는 게 말이 되나. 이과 출신의 시청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단 말이다.
그나마 스토리에 집중하려고 할라치면 뜬금없이 등장하는 PPL은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보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5초짜리 광고처럼 흐름을 툭툭 끊어 놓는다.
이쯤 되면 망작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숨어 있던 카드들이 하나둘씩 꺼내지면서 망작일 것 같은 분위기에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로맨스도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인지 나쁘지만은 않다. 초반의 그 어색했던 연인의 화법도 그렇게 대사를 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필요한 MSG들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냥 뻔한 색깔이었던 캐릭터들이 숨기고 있던 다른 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뜻밖의 숨겨놓은 이야기보따리들이 터지고 있어서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고 있다.
정태을의 분신인 대한제국의 '루나'에 대해서도 아직 그 정체를 자세히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 기대감은 더해만 간다.
뜬금없는 PPL만 아니라면 9회부터 전개될 이야기는 김은숙이 왜 김은숙인지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그저 8화까지는 이 복잡하고 어울리지 않는 평행세계에 대해서 시청자로 하여금 적응을 하게 하느라고 어쩔 수 없이 서론을 좀 길게 끌어간 것뿐이라고 한다면 9화부터는 김은숙 작가가 왜 굳이 배우 김고은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득을 하려들 것 같다.
뜨거운 군고구마의 껍질을 어렵사리 깠으니 이제 후후 불며 먹기만 하자. 9화부터는 풀어놓은 떡밥을 주워 먹기만 해도 충분할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