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봄바람 이 녀석 정말 나쁜 놈이네요. 여름 바람님, SOS!

by 생각하는냥

차갑던 봄바람이 하루새 뜨뜻해지는 이상한 날씨 때문에 2020년의 봄은 그렇게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반팔을 입은 이들이 거리에 하나둘씩 보이면서 그새 여름이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제오늘 봄바람이 불어오네요.


개나리도 벚꽃도 가벼이 보내버리고 이제는 철쭉마저 보내기 직전인데 이제야 제대로 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네요.


어제 출근 때 일이었어요.

사무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앞에서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며칠 전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해왔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커피를 사주면서 나름의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줬건만 그래도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기에 상담의 좌절을 맛보게 했던 그녀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냉큼 저에게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 "이거 뭐예요?"라 물으니 "전에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요."라며 이쁜 미소를 지어주니 순간 설레는 건 뭘까요. 봄바람 제대로 맞아버렸지 뭡니까.


그렇지만 식도염이 있어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카페인과 기름기를 멀리하라고 하셨거든요. 하필 왜 커피였을까요. 선물인데 다른 사람을 주기엔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마시자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게 되니까 일단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신줏단지 모시듯 보면서 설레는 마음이라도 오래도록 뿜 뿜 하려고 그랬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눈 앞에 먹을 게 있으면 본인도 모르는 새 손이 절로 가는 거요. 그리고 어느덧 무의식 중에 이미 입안엔 커피가 들어가 있고 꼴깍꼴깍 삼키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잠깐 옆자리를 힐긋 보게 되었어요. 으응? 저 책상 위에 있는 건 뭐지? 제 거랑 똑같은 커피가 있는 겁니다. 알고 보니 저만 받은 게 아니었더라고요. 아니, 뭐 이런 게 있어. 이내 설렘은 순간 실망으로 돌변하며 허파를 점령하고 있던 봄바람이 피식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아, 봄바람 이 녀석 정말 나쁜 놈이네요. 여름 바람님,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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