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빅픽쳐였을까?
작년 말이었다.
아내의 생일 겸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이패드 프로"를 사주려고 "3세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어떤 걸 살 거냐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조만간에 "4세대"가 나올 거라 좀 더 기다렸다 사겠다며 나의 모든 정보 수집 행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선물을 사주기로 한 사람은 선물을 사줄 때까지 빚쟁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끔 생일과 결혼 기념 선물을 그냥 넘어갔다며 한 소리를 할 때면 아이패드를 사주기로 하지 않았냐며 잃어버린 기억을 상기시켜줘야만 했다. 아, 이놈의 빚쟁이 생활은 언제 끝나나. 더군다나 코로나19 때문인지 원래 애플의 신제품이 나와야 할 때인데 좀 더 지연이 되는 모양이었다. 왜 하필.
그러던 중 얼마 전 티브이에서 아이패드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따로 아이패드 프로 4세대라 하지 않아서 몰랐다. 그게 "4세대"인 줄.
뒤늦게 알아채고는 각종 오픈마켓을 뒤지며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다 땡땡 마트에서 카드 이벤트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가 선호하는 사이즈와 색상, 그리고 저장용량을 취합하여 상품을 선택하고 보니 이런 젠장. 품절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너무 늦게 신청한 것이다. 결국 용량을 한 단계 올릴 수밖에 없었다. 256GB에서 512GB로. 그러자 가격이 무려 25만 원 정도가 올라갔다.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 큰 마음먹고 일시불로 질렀다. 아, 그래. 드디어 빚쟁이 생활 청산이구나.
그런데 다음날 직장에 있는 내게 아내의 전화가 왔다. 결제한 카드가 매달 30만 원 이상을 써야 할인이 되니까 일시불로 하지 말고 할부로 결제를 하라는 거였다. 일리가 있었다. 주문내역을 취소하고 해당 제품을 검색하는데 이런 제길, 이런 제길, 이런 제길.....
해당 제품이 품절이라는 게다. 취소한 지 채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땡땡 마트가 그나마 제일 저렴했던지라 여기로 사람들이 몰렸던 모양이다.
이제 남은 용량은 1TB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가격은 256GB보다 무려 50만 원이나 더 줘야 하는.....
이제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원래 사려고 했던 것을 몇만 원 더 주고 다른 곳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할인된 가격의 더 높은 사양으로 땡땡 마트에서 살 것이냐. 하나 더 추가된 선택은 다음번 예약을 기다리는 것이냐.
차라리 짜장면을 먹느냐, 짬뽕을 먹느냐의 선택이 더 쉽겠지.
차라리 탕수육을 찍먹 할 거냐 부먹 할 거냐의 선택이 더 쉽겠지.
결국 지름신이 강림하사 50만 원 더 주는 1TB 제품으로 결제를 완료하니 폰이 부들부들 떨며 같이 오열을 해준다. 주문이 완료되었다는 문자와 카드사로부터 얼마가 결제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온다.
그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카드결제를 할부로 유도한 것이 아내의 빅픽쳐는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미 재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 당장 지를 거라는 나의 성격과 상황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불행히도 물증은 없다. 어쩌면 집에 가면 벽면에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탈옥에 대한 순서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뭔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쯤 했으니 이사를 가더라도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지 않더라도 이사 갈 집에 데려가 주기는 하겠지 싶어 안심이 된다. 난 내일부터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