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2020년 어느 날

갑자기 술 한 잔이 그리웠다

by 생각하는냥

아침부터 내린 비 덕분에 신발도 바지도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날 아무리 적셔봤자 야하지도 않거니와 볼 것도 없는데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처자나 찾아서 적시는 게 좋지 않을까?


비 오는 와중에 음악을 듣는다고 휴대폰을 조작하는데

액정에 빗물이 닿으니 조작도 어렵다.

봄비한테 집중해달라고 휴대폰 사용도 못하게 심술을 부린다.


보통 같았으면 짜증이 밀려올 법도 한데

영화 속 세트장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혹은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 버린 구석에 처박힌 영화 필름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없는데 겁나게 센티해지는 아침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젖어버린 신발과 양말을

탁상용 미니 선풍기의 작은 날개에 잘 말려달라고 부탁해 본다.


자리에 앉아 일하다 문득 창가로 향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비 오는 날의 풍경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이색적인 상상에 빠지게 한다.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얼룩덜룩한 우산 괴물 같다.

우산 뚜껑에 발만 튀어나와 돌아다니니까 말이다.

마치 모래사장 위의 바닷게들이 분주하게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커다란 수족관 안을 내려다보는 것도 같다.


신호등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그마한 우산 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손을 뻗어 들어 올려본다거나

혹은 손가락으로 튕겨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손은 닿지 않는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가 있다면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닐 나 역시도 그에게는

조그마한 우산 괴물에 지나지 않겠지.


비가 그칠만하면 빗방울이 다시 날리고

빗방울이 날릴만하면 금세 다시 그치는 봄비였다.


그래도 우산 위에 후드득 소리를 내주며 떨어질 때면

빗방울 소리가 아름답고 빗방울 터지는 타격감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달될 때의 그 느낌이 너무도 좋았다.


갑자기 술 한 잔이 그리웠다.

굳이 누구랑 마시지 않더라도 딱 한 잔 넘김 하고 싶었다.

저녁 반찬이 찌개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아내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맥도널드 기프트콘 하나와 함께

맥도널드 앱에서 오늘의 할인되는 메뉴를 알려주는 게다.

집에 올 때 사 오라는 얘기다.


아, 네네.


봄비로 인해 영화 필름 속에 빠져 있던 허세 영혼은

금세 현실로 소환되어

양손에 버거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아, 난 행복하다.

아, 난 행복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패드 프로 4세대 구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