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잡담 중에 튀어나온 동방신기
지인과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던 중 80~90년대의 무협영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의천도룡기, 신조협려, 절대쌍교 등이 오래된 보석함에서 꺼내어져 나열되더니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양조위, 이연걸, 유덕화, 장만옥 등의 배우들 이름도 쑥쑥 나왔다.
특히나 의천도룡기 하면 중국 무협을 대표하는 최고봉이 아니던가. 의천도룡기 TV판은 몇 년마다 재제작되기는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건대 남자 주인공의 연기력으로만 따져 본다면 1986의 양조위가 제일이지 않았나 싶다.
CG가 발달한 요즘 같은 시대면 무협영화를 좀 더 살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마블 시리즈를 보듯 한껏 더 멋지게 표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무협영화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CG만 잔뜩이고 액션다운 액션의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냥 손만 뻗으면 요란한 불빛으로 뭐가 나간다.
게다가 무협을 주물럭거릴만한 이름값 하는 액션 배우도 없다. 겨우 견자단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의 나이상 '엽문4'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그마저도 아쉬울 노릇이다.
이연걸의 영화판 의천도룡기는 후속이 계속 나오지 않았던 것이 너무도 아깝다. 3부작쯤으로 제작되었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더 얘기하다가 그 시절의 무협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여인의 이름을 등장시키고 싶어 졌다. 바로 임청하다. 임청하 생각에 지인에게 영화 제목을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동방'하고는 그 뒤가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동방'뭐였더라. 쉬운 제목이었는데. 고민하고 고민하다 바로 떠오른 제목을 의심해볼 겨를도 없이 뱉어내고 말았다.
"동방신기도 너무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임청하가 짱이었죠."
"임청하요? 임청하 나온 건 동방불패 아닌가요? 동방신기라는 영화도 있었나 봐요?"
순간 잘못 내뱉은 단어에 하도 어이가 없어 혼자 웃겨 죽겠는데 지인도 한술 더 뜨고 있는 게 아닌가. 동방신기란 영화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가수 그룹인데. 계속 말하다가는 둘 다 금세 바닥이 드러날지도 몰라 대화는 급 마무리 지어졌다.
오래된 보석함에도 먼지가 끼어들듯 오래된 추억 속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단어 몇 개 정도는 먼지가 쌓여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구글링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자칫 검토 안 하고 뱉었다간 이처럼 낭패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수만 있다면 임청하 씨에게 꼭 부탁을 드려봐야겠다. 영화 제목을 동방신기로 해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