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에 관한 생활백서

재수 없는 일은 있을지언정 재수 없는 날이란 없다

by 생각하는냥

사건 1.


인터넷으로 조립 PC를 알아보던 중 성능 비교를 하다 보니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부품을 결정을 하고 이제 막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데 순간 결제 금액이 2만 원 인상되어 있는 게 아닌가. 으잉?


원래 PC 부품 가격은 특정 시간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격이 바뀌곤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하필 결제 타이밍에 딱 걸리냐. 짜증 제대로다. 재수 없는 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비교를 당하는 건 사물조차도 싫어하는갑다. 피래야 미미하지만 난 그들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괜히 전화를 걸어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되지도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인상 전의 가격으로 살 수 없는지를 물어본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될 리 없다.



사건 2.


전화를 끊고 몇 번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버지가 쓰실 PC다 보니 팔팔 끓는 냄비 뚜껑 마냥 팔딱거리는 뇌를 진정시키고 결제버튼을 눌러본다. 현금과 카드결제 중 선택하라는데 무통장입금을 하면 조금 더 할인이 된다 하여 무통장으로 선택을 하였다.


이제 인터넷뱅킹에 들어가서 입금을 하면 이 미션은 종료된다.

공인인증서 로그인 완료 및 OTP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으잉? 이건 또 무슨 조화야.


'dnLd13'


원래 OTP카드는 숫자만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텍스트 조합이라니. 처음엔 방식이 바뀐 줄 알고 이 희한한 문자를 인터넷 뱅킹란에 넣어보는데 입력이 될 리 없었다.


침착하게 구글 신에 물어보니 OTP에러 메시지라는 게다. OTP와 신분증을 들고 가까운 은행에 방문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수리비로 5천 원을 내야 한단다. 5천 원?


그래, 이제부터인가 보다? 재수 없는 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바로 그 맛이구나.



사건 3.


은행을 가려고 밖을 나가니 하늘이 많이 흐렸다. 비가 언제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나왔는데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가기엔 애매했다. 그래. 재수 없는 날의 본격적인 시작인데 뭐가 두려워. 비가 오면 우산을 사면 되는 거야. 어차피 소모품이다. 그렇게 쌓인 우산이 여럿이긴 하다.


은행에 도착해서는 이게 내 실수로 고장이 난 게 아니므로 5천 원은 죽어도 내지 못하겠노라는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OTP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너무도 해맑게 별말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새 OTP를 주는 게 아닌가. 기존 업체 제품이 고장이 너무 잘 나서 업체가 바뀌었다며 무상으로 교체를 해 준 것이다.


은행을 나서는데 그리 어두웠던 하늘은 여직까지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그제야 떨어지는 빗방울. 멋진 녀석일세.



사건 4.


저녁은 콩불고기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쫘악 돌려 볶아먹어 보니 짜장면을 먹는 듯한 묘한 맛이 난다. 근데 왜 내가 저녁을 다 먹고 난 다음에야 아내는 콩불고기를 볶아온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긴 하지만 세상에는 궁금하다고 물어선 안 되는 것도 존재한다.



정리.


재수 없는 일은 있을지언정 재수 없는 날이란 없다.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재수 없는 날로 규정을 지어버리는 순간 재수와 관련 없을 일도 재수 없는 일로 연결되어질 수 있음을 주의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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