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있다면 아픔을 줬을 땐 더 아픈 게 정상이다.
= 프롤로그 1.
"마음아 괜찮아?"
마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은 아프다고 말합니다. 이때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아픔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밀어넣으라고. 그래야 안아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아픔을 밀어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마음아 괜찮아?"
그러자 마음이 대답하기를
"아니야, 더 아파. 너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해서."
= 프롤로그 2.
길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기로운 꽃향기에 젖어 그 길을 걷고
누군가는 어깨 가득 무거운 짐을 둘러메고 가다 화가 난다며 꽃들을 향해 발길질을 해가며 지나갑니다.
그렇게 그 길은 어제도 지나갔었고 오늘도 지나가고 내일도 지나갈 겁니다.
다양한 군상들이 하루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지나치는 그 길입니다.
흔한 그 길입니다.
그 길의 이름은 "인생" 입니다.
= 씬.
"졸려"
여자가 남자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톡이 반가웠습니다. 졸리다는 걸 보니 집인가 했습니다.
"집이니?"
"아니. 일하는 중"
그리고 뻔하고 식상한 질문이라서 하지 말아야 하는 질문인 줄 알면서 남자는 무심코 물어보고 맙니다.
"회사는 어디야?"
그러자 독한 답이 옵니다.
"왜? 알아서 뭐하게"
안다고 해서 찾아갈 것도 아니고, 안다고 해서 사귈 것도 아니고, 안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한 질문을 던졌다 싶었는데 이미 때는 늦었고 독한 대답에 남자는 그만 기분이 상하고 맙니다.
식상한 질문에 당황스런 답변이 왔지만 그래도 별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기분은 상해있고 불편한 마음이 자라납니다. 다양한 인생이지만 식상한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인생이기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덤으로 오는 세상입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픔을 전가한 것을 알아버려 이내 마음이 더 아파진 여자는 다시 말을 건넵니다.
"미안. 지금 너무 예민해서 말을 그렇게 했어. 내가 미안."
= 에필로그.
일본불매운동의 목적은 극우 아베정권에 대한 목소리입니다. 일본과의 단절이 목적이 아니라 양심없는 발언을 일삼는 아베정권에 경제적 타격을 주자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일본불매운동은 근본적으로 그들과의 완전한 단절이 목적이 아니라서 경제적 보복이어야지 문화적 보복이어서는 안됩니다.
아픔을 전가해놓고 모른 척하는 사람과는 같은 길을 동행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지만 아픔을 전가하라고 속삭이는 악마와는 함께 할 수 없음 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아픔을 줬을 땐 더 아픈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늘 아픔만 줍니다.
극우적 발언을 일삼더니 이제는 국내 토착왜구까지 선동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그들은 그냥 악마입니다.
에라이, 지옥에나 떨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