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없는 너에게 소고기를 먹여주마.
부르르 몸을 떠는 녀석의 정체는 휴대폰이다. 녀석은 마치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기라도 한 것처럼 유난을 떤다. 그래서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줘야 한다.
이리 오너라.
화면을 클릭하니 가족 단톡 방 알림에 숫자가 보였다. 가족 단톡 방은 대체로 지극히 일상적인 매일이 비슷한 안부인사로 시작을 하곤 한다. 또 뭐 비슷한 인사말이겠지 싶어 클릭을 해보니 색다른 내용의 글이었다. 조카 녀석이 입대를 했다는 얘기다. 입대? 임대 아니고 입대? 군대의 그 입대라고? 갑자기?
너무 일상적인 가족 단톡 방이다 보니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가끔은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조카의 입대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놓치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무심한 외삼촌아, 그래도 조카가 입대를 한다는데 같은 지역에 살면서 따뜻한 밥 한 끼 사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전화 한 통 안 해주고 그리 보냈더냐.
누나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왜 알려주지 않았냐며 따지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은 누나의 목소리가 이미 글썽이고 있으니 차마 따지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말이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아니한가. 그 팔팔하던 이십 대의 청춘이던 내가 입대를 할 때만 해도 눈물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누나가 자식 입대한다니 눈물을 글썽이다니 말이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닌데 내가 말이야 많이 서운하단 말이야. 하긴 난 현역이 아니었으니 거기에 비교할 건 아니긴 하다.
아, 그러고 보니 난 누나에게서 눈물보다 더 큰 것을 받은 적이 있었구나.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이야기 하나가 소환되었다.
당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난 상당히 하급의 체력으로 고생 좀 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훈련소 소대장이 나를 어여삐 여기사 누나가 있다는 소식에 어찌어찌하여 누나를 소개해주기로 하게 되었고 또 어찌어찌하여 둘의 소개팅을 성사시켜주었다. 그 덕에 훈련소 생활이 좀 더 편해졌는지 아닌지는 딱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찌 되었든 누나는 그렇게 나를 위해 희생(?)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덕을 봐놓고도 손톱만큼도 고맙다 하지 않았으니 참 나쁜 동생 놈이고 참 나쁜 외삼촌이 아닐 수가 없다.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의 이야기를 소환해 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기는 하다. 그때의 추억을 소환하면 누나도 재밌어라 하지 않을까? 다만 매형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략 난감되시겠다. 어쩌면 매형이 아는 순간 명절 때마다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추억 소환은 여기서 입 닫자.
누나에게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입대를 한 거냐 물으니 조카 녀석이 조용히 다녀오겠다며 일부러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녀석 참 상남자네. 나 같으면 일단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고 눈물방울 뚝뚝 흘리면서 온갖 허세를 떨어가며 입대를 했을 텐데 말이다. 나 같으면이 아니라 예전에 내가 그렇게 입소했던 것 같다. 것도 현역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주변에서 얼마나 혀를 찼을까. 이십 년도 넘은 이야긴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나저나 조카는 소개해줄 누나도 없는데 힘들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휴가 나오면 누나가 없는 너에게 소고기라도 먹여 보내주마. 소고기 먹을 돈이라도 열심히 벌어둬야지. 열심히 일할 생각 하니 멀쩡하던 허리가 후끈 달아오른다. 아이고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