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폭탄 맞은 날

벌은 지옥불처럼 뜨거운 날이 제격 아니겠는가

by 생각하는냥

날이 더운 하루였다.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다. 걷는 것조차 답답한 날,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알고 지내던 인연에 폭탄을 맞았다. 하필이면 왜 오늘인가.

불안의 시작은 양말부터였나 보다. 분명히 있어야 할 위치에 양말은 보이지 않았고 서서히 출근시간의 압박이 가해지며 아침부터 쫄깃한 긴장을 타야 했다. 어렵사리 찾은 양말을 신고 나니 출근길은 그야말로 타이트한 고무줄 같았다. 더군다나 주간회의가 있는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뭐라니.

급하게 출근길을 재촉하며 꺼내 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한쪽은 귀에 쏙 들어갔는데 다른 한쪽은 차가운 쇳덩이가 귀를 찔렀다. 깜짝 놀라 보니 이어폰을 꽂는다는 게 이어폰 잭을 귀에 꽂은 것이었다. 급하다 보니 별게 다 엇갈리는구나. 인연의 엇갈림을 이리 예고하고 있었던 것일까?

월요일 아침부터 주간회의는 그리 어려운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가볍게 발을 디딘 징검다리쯤이었다.

오늘날이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부터 글을 쓴다는 사람을 알게 되어 인연을 맺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의견을 주고받다가 내 입장에선 이러저러하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게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차단. 왜? 궁금했지만 이미 차단을 당했으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 뭐, 그만큼의 인연밖에 되지 않는 거겠지라며 아쉬울 게 없이 지나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다음의 인연이 문제였다. 억울한 상황에서의 폭탄이 터지고 말았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듣고 있던 인터넷 방송이 있었다. 인기 많은 방은 아니었지만 틀에 박힌 방송이 아니었기에 그 자연스러움에 매료되어 듣던 방송이었다. 디제이는 이제 대학생이라서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아이돌을 바라보는 삼촌팬의 마음으로 듣던 방송이었고 어리지만 그녀를 존중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이던 그녀가 시험을 앞두고 장이 꼬였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이라고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하던 도중 대충 대학을 가늠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지역이 내 고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먼 타지에서 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촌팬의 입장에서 근처 병원을 검색하여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을 알려주고 빨리 병원 가보라고 재촉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날 시험을 망칠 게 뻔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의 발단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는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인터넷에 접속을 했는데 그녀의 라이브 방송이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겨 알아보니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왜? 내가 대체 뭘 했는데?

물어 물어 차단을 당한 이유를 알아보니 자신의 학교에 대해서 내가 굳이 알아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응? 아니, 여보쇼. 그 지역은 당신이 방송 내내 얘기한 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딸랑 두 개뿐이란 말이오. 게다가 당신이 방송 중에 날린 멘트 중엔 딱 그 학교만을 이미 가리키고 있었단 말이오. 내가 알고 싶어서 뒷조사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란 말이오.

그녀는 아마 내가 뒷조사라도 하려고 애를 썼던 걸로 착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내 입장을 정리해서 오해를 풀려고 입장문을 전달을 했지만 오해는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몰려졌다. 순간 난 쓰레기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 험한 세상이니 이해는 간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름의 나만의 스타에게 그렇게 몰리는 기분이란 정말 엿같다.

그 나이에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관심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야 억울한 상황이지만 그 어린아이에게는 불편하고 불안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아이디를 바꿔 들어가 딴 사람인 양 해도 되기는 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쓰레기로 만들어버린 사람을 애써 찾아갈 인연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이 무더운 날에 두 개의 인연을 상실한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하는 것 아니냐. 조물주여, 당신 말이오. 당신.

문득 법정 스님의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란 말씀이 상기되는 날이다.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은 바로 이런 지옥불처럼 뜨거운 날이 제격 아니겠는가.

그런데 진실 없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솎아내야 하는 걸까? 40대, 이 질문 앞에서 문득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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