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의 목적에 대하여
앗? 딸기주스네.
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딸기주스는 옆자리 책상 위에 내 자리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다. 전날 업무지원을 위해 야근 대기를 해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 하나가 사놓은 거라는 걸 알기는 했지만 누구 입은 금 발랐고 누구 입은 은 발랐냐. 이 차별 뭐지? 내 입도 딸기주스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투덜이 모드가 또다시 가동되었다.
투덜이 모드가 가동이 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투덜이가 된 이유는 차별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옆 동료가 그에게 무언가를 더 많이 해줬다거나 혹은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가는 거라고 한다면 이해는 가겠다. 그런데 일단 둘 다 동성이다. 게다가 우린 둘 다 대기만 했을 뿐 해 준 일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었기에 둘 중 누구는 딸기 주스일 필요는 없었다.
둘이 조금 친할 수는 있었겠지. 혹은 전에 술값을 내준 적이 있었겠지. 혹은 둘이 머나먼 친척이라든지 혹은 어떤 인맥의 꼬리가 있었겠지. 어느 타이밍에선가부터 둘이 호형호제라 부르는 사이가 된 것일 수도 있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지.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차별은 서럽다.
차별은 받은 보상에도 불구하고 없던 서러움까지 끄집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두 번째 투덜이가 된 이유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쿠폰은 환영이다. 다른 걸로 바꿔 마시면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사다 놓으면 고마운 건 고마운데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려야만 한다. 휴.
원래 커피를 마시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에스프레소까지 쪽쪽 빨아 마셨었는데 최소한 커피 애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실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최소한 하루에 한 잔은 업무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런데 재작년부턴가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숨 쉬기도 힘들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카페인 분해를 못하는 몸이 된 것이다. 처음엔 무척 당혹스러웠다.
우유도 매운 음식도 아무 탈 없이 잘 먹던 때가 있었다. 우유를 거르는 날이 적었던 때가 있었고,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거뜬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우유도 매운 음식도 먹으면 탈이 나버리는 몸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아는 건 신과 의사들 뿐이겠지. 그런데 신이나 의사나 동급이다. 의사들도 이런 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의사가 거의 없다.
몸에 받지 않는 음식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죽을 때까지 홀로 존버 해야 하는 거 알면서 신에게 하소연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그의 책상 위에는 몇 모금 마시다만 딸기주스가 있었다. 저 봐. 난 딸기주스 잘 마시는데 차라리 날 주지 그랬어. 우리는 둘 다 서로의 보상을 채 소화하지도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보상이라는 건 주는 데 목적이 있느냐 아니면 일대일 맞춤형 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라면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결말로 끝이 나겠지만 전자의 경우이고 더군다나 나 같은 투덜이를 만나게 된다면 끝없이 씹히는 막장 드라마의 결말로 끝이 난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글을 쓰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지만 쓰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딸기주스를 마시지 못한 한을 이렇게라도 풀지 않는다면.....
쿨럭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