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세면대야, 이제 그만 돌아와 줘.
여자 화장실의 불은 종종 꺼져 있다.
오전 9시경의 사무실 층 남자 화장실 옆 여자 화장실은 종종 그렇다. 남자 화장실은 8시 30분 이전에도 불이 켜져 있는데 반해 여자 화장실은 종종 그렇다. 층에 근무하는 모든 회사 여직원 수를 합하면 적은 편도 아닌데 여자 화장실은 종종 그렇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지각이 많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문제의 시선을 여자 화장실로 향하면 여직원들이 지각이 많은가 보다고 하겠지만 문제의 시선을 남자 화장실로 가져가면 남자 화장실이 유독 북적거린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자는 잡식성이다. 특히나 술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러다 보니 장이 나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남자화장실은 늘 만원이다.
남자라는 족속은 건망증도 심하다. 칫솔을 왜 그렇게들 놓고 가는 건지 모르겠다. 야, 나도 칫솔 있어. 네 거 안 쓴다고. 그러더니 요새는 품목이 하나 더 늘었다.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하여 마스크가 추가되었다. 야, 나도 마스크는 넘쳐나. 차라리 신사임당을 두고 갔더라면 이리 투덜거리지는 않았을 텐데.
한 번은 통화 중이던 한 남자가 뒤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소변기 세 칸 중에 부담스럽게 굳이 옆자리까지 따라 들어와 일을 보는 게 아닌가. 그 와중에 통화가 끝났고 휴대폰을 넣을 옷 주머니는 충분했던 거 같은데 공용으로 사용하는 소변기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는 게 아닌가. 뭐지?
가끔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면 청소 아주머니의 투정 거림을 듣곤 한다. 여기 층 화장실이 제일 더러운 층 중의 하나라며. 남자화장실이나 여자화장실 모두 지저분하단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해드리긴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뒤로 화장실에서 청소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면 휴지 하나 버리는 것도 수돗물 한 방울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휴지를 버리더라도 돌돌 말아서 휴지통에 넣기까지 하고 물 한 방울 튀어 있으면 애써 닦는다. 아고 눈치 보여.
이런 이야기를 직원들 모인 가운데 했더니 듣고 있던 여직원 하나가 여자 화장실만의 썰을 해 준다. 그곳에는 옆 회사의 유명한 삼총사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대낮부터 고데기를 가져와 화장실을 점령하고 펌질을 한단다. 자칫 화장실에 미용실을 오픈할 판이라며.
한 번은 자신이 바닥에 떨어뜨린 휴지도 아닌데 청소 아주머니한테 한소리 들었단다. 그래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알고 보니 그 범인이 그 요란한 삼총사의 짓이었다는 게다.
화장실 빌런들이 죄다 이 층에만 모였는가 보다. 이런 상황이니 청소 아주머니가 좋아할 리 없지.
지난주 월요일에 고장 나서 수거된 세면대 하나가 있는데,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마나 미운털이 박혔으면 세면대는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세면대도 더 이상 손님을 받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말이야. 집 나간 세면대야, 이제 그만 돌아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