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게 사람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집단에나 기생하는 빌런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라는 영역을 담당한다. 그들은 사회악적인 존재지만 대체로 그들 스스로는 빌런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직장상사일 수도 있고 더러는 부하직원일 수도 있다.
이 글은 빌런을 피하는 방법이나 이기는 방법을 쓴 글이 아니다. 다만 내 인생 최대의 빌런을 어떻게 만났고 그때 어떤 실수를 했는지를 공유하여 당신은 좀 더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라는 글이다.
빌런을 만나게 되면 대체로 피해서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사표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결국엔 직장인 아닌가. 그래서 회사가 엿같지만 않다면 존버의 정신을 이어받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부딪힐 일이 그리 많지 않다면 버티다 보면 빌런도 퇴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 최대의 빌런을 만나게 되어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더러는 피하는 게 상책인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니던 회사가 모기업에 흡수가 되면서 오게 된 책임자가 있었다. 그의 장기는 그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을 한 마디 하게 되면 그 직원을 1시간가량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 그것을 당했을 때는 머리가 하루 동안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상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제휴업체와 관련하여 해당 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1시간의 정신교육을 감행하였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신공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녁을 먹자는 게다.
딱히 같이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나름 진심을 섞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같이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크나큰 실수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도중 갑자기 아까 하던 정신교육을 또다시 감행하는 게 아닌가. 최소한 정신이 제대로인 사람이라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밥 먹는데 이러긴가. 겨우 끝이 나자 이제 피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술 한잔을 걸치자는 게다.
그래 뭐 술 한잔 하는데 술자리에서는 편하게 마시겠지 싶었다. 그러나 또 이어지는 그의 정신교육. 그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 자리를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술에 취한 척 술상을 엎고라도 나왔어야 했었다. 그때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술자리를 파하고 나오려는데 또다시 그가 잡았다. 싫다 싫다 했는데 기어이 끌고 갔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정신교육. 정말 미치고 팔짝 뛰는 줄 알았다. 그 날의 시간을 모두 합해보니 무려 8시간이었다. 그 일로 인해 일주일간이나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 일뿐이었으랴. 딱 봐도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반대를 했더니 또 한 시간 이상의 정신교육이 뒤를 따랐다. 어쩔 수 없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내게 책임을 돌렸다. 그래서 애초에 불가능한 프로젝트라 하지 않았냐 하니 그의 답이 가관이었다. '그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말렸어야지.'
결국 그를 약 2년간이나 버텨내다가 사표를 내고 말았다. 존버 하면 이길 줄 착각했던 것이다.
사표를 내고는 지인들을 만나면 그 회사에서 그로 인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내며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나마 같은 직장에 있었거나 비슷한 직종의 일을 해서 잘 알고 있을 사람들 몇몇에게 술만 들어가면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맨 처음엔 경청을 해주던 이들도 하나둘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단 이유로 오히려 난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데 좋아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결국 듣다 듣다 지친 이가 바로 코앞에서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마음속의 이야기를 누군가 공감해주고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탕감되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바꿔서 글로 써보기로 하였다. 인생 최대의 빌런에 대한 욕을 SNS를 통해서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며칠간은 속이 참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간 SNS를 둘러보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되니 잊어버렸던 감정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후련해지자고 쓴 글이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도 화를 상승시키는 매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역효과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가 그 회사에서 잘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 벙커에 갇혀버린 감정이 구제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뭐 하나 나아질 게 없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최선의 방법은 나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이를 찾는 것이었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해주는 척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결국 최선의 방법이자 최악의 방법으로 시간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모든 일이 무덤덤해지는데 1년간의 시간이 걸렸던 듯싶다. 이직한 회사의 업무에 집중하여 일을 하다 보니 전 회사에서의 트라우마들은 이내 무덤덤해졌으며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일도 없어졌다. 별 심오한 처방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정리가 되는데 시간만 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끌어내는 일은 부모형제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말재주가 뛰어나서 친화력이 뛰어나다면 모를까. 하지만 일반인이 선택했다가는 오히려 지인마저 멀어지게 되기에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또한 싫은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은 미련한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의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를 담은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가 있다. 지나간 일의 치유는 시간이 해주기 마련이다. '중헌 게 뭔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앞으로의 삶이지 지나간 빌런이 아니지 않은가. 지나간 빌런 때문에 내 삶을 굳이 거기에 멈춰 있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어디를 가든 가득한 빌런인데 굳이 과거의 빌런까지 소환해서 있지도 않은 적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나중에 들린 소문에 의하면 결국 그는 그 회사에서 잘렸다고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또 다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수명을 갉아먹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2020년의 여름의 기록적인 장마가 한창이다. 이렇게 긴 장마가 또 있었을까. 수재민이 늘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다시 이 위기를 겪고 지나갈 것이다. 장마가 제 아무리 길다 하나 세상 모두가 죽을 만큼 오지는 않더라. 마찬가지로 인생에 다가올 그 어떤 위기도 죽을 만큼은 오지 않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게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