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뽀송뽀송해지고 싶은
기나긴 장마로 얼룩진 밖을 둘러보며 멍 때려본다.
폭우로 불어났던 강물이 휩쓸고 간 강가의 수풀들은 마치 10 대 0의 비율의 가르마에 기름을 찰지게 발라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한 것처럼 쓰러져 있다. 흙탕물은 온데간데없이 점차 맑아지고 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찾아간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구름에 발이 달려있지 않다면 모를까 바람에 이끌려 가고 있는 거겠지? 구름은 좋겠다. 얼마나 이쁘면 바람이 저리 데리고 다닐까. 아니다. 구름은 따라다니기는 할 망정 매우 귀찮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속사정이야 누가 알까.
그런데 지상은 나뭇잎조차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바람이 없다. 하늘은 바람이 쌩쌩인데 지상은 바람 한 점 없는 이런 날이 또 있었나?
원래 하늘땅 할 것 없이 잘도 놀아주었던 바람이었다. 더울 때면 시원하라고 산들바람을 날려주었고, 꽃향기 가득한 봄이 찾아오면 봄에 취하라고 봄바람을 맘껏 날려주었으며, 힘들 때면 힘들지 말라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을 휘감아 주며 토닥여 주었던 바람이었다. 이별로 슬퍼할 때 미어지는 가슴을 위로해주던 바람이었고, 사랑의 시그널을 담아 사랑하는 이에게 살포시 전달해주었던 바람이었다.
그런 바람이 바람났나?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나긴 여름 장마로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들을 멀리 보내려고 지상의 바람까지 동원해 저 멀리 보내려고 바람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과 구름 싸움에 싸움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놀다 간다고 한 먹구름은 장마까지 데려와서는 바람이네 집 안방까지 점령하고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바람은 장마 데리고 빨리 꺼지라고 화를 낸다. 그러다 멱살잡이까지 번졌을 것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놀던 바람까지 모두 소집하여 하늘에서 둘이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이길까?
주간 날씨예보는 내일부터 일요일까지만 비라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이 기나긴 장마가 끝나려는지 다음 주 내내 비 소식이 없다. 기상청 체육대회 때마다 비가 내린다는 소문이 말하듯 대한민국 기상청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장마가 끝인 모양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장마가 끝나고 나면 폭염이 시작할 것만 같은 이 불안감은 뭘까. 구름과의 싸움질에 파김치가 되어버린 바람이 폭염 속에서 빨리빨리 움직여주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폭염이 온다 하더라도 그립고 그리운 따사로운 햇볕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그 볕에 뽀송뽀송해지는 이불과 빨래들, 그리고 같이 뽀송뽀송해질 사람의 마음도 그립다. 폭염이 오면 폭염 온다고 입술 삐죽 튀어나와 투덜거릴 게 분명하긴 하다만 그래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