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아 이어붙이기
십원, 백 원, 오백 원 동전이 굴러다닌다. 가지고 다니기는 귀찮아 돼지저금통에 하나둘 넣기는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동전들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돼지저금통은 구석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발이 달려 가출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 잘 뒤져보면 나오겠지.
요즘 내 글이 그렇다. 소재거리를 하나둘 메모는 해놓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귀찮다. 글로 쓰려다 막힌 게 몇 번인지. 어차피 글쟁이도 아니고 취미 삼아 쓰는 글이지만 예전엔 참 가볍게 술술 잘도 끄적거렸는데 이제는 진수성찬이라도 차리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인지 막상 몇 글자 두들 거리다 금세 진이 빠져 쓰던 글을 접고 만다. 한동안 잘 쓰던 글을 멈춘 이유가 이렇다.
그나마 이제라도 글을 쓰는 것은 오래된 돼지저금통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만 쏙쏙 골라 뺄 때랑 비슷한 심정이랄까? 그래서 겨우 빼낸 오백 원짜리 동전들을 나열해본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화장실에서 열심히 이를 닦고 나서 휴지를 꺼내 입가의 물기를 닦아 내었다. 오른손에는 칫솔이, 왼손에는 다 쓴 휴지가 있었고 무심코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던지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버려야 할 휴지가 왜 손에 있는 것인가. 쓰레기통을 보니 방금 사용한 칫솔이 들어가 있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기회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퇴근길이었다. 문득 편의점 도시락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저녁을 먹지 않고 야근을 하다 저녁 9시 조금 넘은 시간의 퇴근길이라 편의점에 도시락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렸는데 다행히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것은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잘 팔리지 않아 남은 제품일까. 그래, 시장이 반찬이라 하였다. 제 아무리 맛이 없기로 소니 막강한 배고픔이라는 MSG를 이길 수야 없겠지. 그러나 알아버렸다. 정말 맛이 없으면 시장도 반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기회가 그렇다. 운이 좋아 온 기회라고 해서 덥석 잡았는데 그게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썩은 동아줄일 수도 있다.
날씨가 변덕이다.
하루는 날이 너무 따뜻한데 비까지 내려 웅덩이에 땅이 질척거려 신발을 더럽혔는데 바로 그다음 날 갑자기 추워져서 얼어버린 인절미처럼 땅이 딱딱해져 있더니 바로 다음날은 아이스크림같이 새하얀 눈으로 도배가 되었다. 달력에만 입춘이라 쓰여 있고 눈바람이 몰아친 날이 불과 1주일 전의 이야기다. 그런 날씨였는데 또다시 금세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또 추워졌다. 이렇게 변덕이 심한 날씨를 본 적이 있었던가. 이 녀석의 죽 끓는듯한 변덕에 롱 패딩만 죽어라 입었는데 옷을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엉덩이를 때린다. 파다 다닥. 찌리릿.
꼰대는 꼰대를 알아본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직원 하나가 혹시 다른 버전의 오피스 프로그램이 있는지를 묻는다. 수식이 안 먹는다며 자신이 사용하는 버전이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고 최신 버전이 없냐는 게다. 웬만한 수식 아니면 버전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을 텐데 이상하게 버전 탓을 하는 게 이상했다. 일단은 없으니 없다고 답했더니 실망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자리로 가서 문제가 해결됐냐고 물으니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이러저러하게 해보지 않았냐 물으니 대뜸 눈을 부릅뜨며 '제가 이것만 수년을 해서 잘 아는데요'라고 도와주려는 사람을 물려는 태세로 나오는 게 아닌가. 으잉. 난 도움을 주러 온 것이지 당신의 허점을 찌르려고 온 게 아닌데.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안 돼서 아쉬운 사람은 당신이지 내가 아닌데 굳이.
'내가 뭐를 해봐서 잘 아는데'
'내가 이것만 몇 년째인데'
이런 말을 하는 꼰대는 자신의 주장하는 상식의 틀에 갇혀서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런 꼰대를 대할 때가 가장 힘들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꼰대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걸 자칭 꼰대는 잘 안다. 그런 일을 몇 년째 당해봐서 잘 안다.
배를 짼 돼지저금통이 쓰레기통으로 향할지 아니면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글을 쓰게 될지는 내일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자칭 꼰대는 변덕이 심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온 글 쓸 기회를 기회라 생각하지 못하여 오른손과 왼손의 엇박자 속에 하루하루를 까먹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이쯤 되니 고 양종철 개그맨 아저씨가 남긴 주옥같은 말씀이 생각난다.
"밥 먹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