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하는냥 Feb 12. 2023

코로나 여행기

혹시 슈퍼면역자인가? 근거 없는 자만심에 빠지다.

3년 동안 수고했어.


그때도 이쯤이었다. 3년 전 1월 말 신종플루 A형 독감에 걸렸었다. 굵은 눈발이 날리던 그날 병원을 찾아 아픈 몸을 이끌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늘 가던 병원 놔두고 낯선 병원은 왜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근처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지도를 보니 쉽게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의 난 마치 제갈량의 석병팔진 안에 갇힌 적군이 되어 있었다. 그 눈발 속을 무려 삼십 분 넘게 헤매고 나서야 겨우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고생을 한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그때가 막 코로나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때였다.


이후 코로나로부터 무려 3년을 잘 버텼다. 3차례의 코로나 백신을 맞았으며 그 누구보다도 마스크를 열심히 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마스크를 무늬로 착용한다거나 수다 떠는 빌런들을 피해 나름의 안전구역을 찾아 잘도 버텨왔다. 사무실 사람들 대부분 한 번은 걸린 코로나를 나만 비켜갔다. '혹시 슈퍼면역자인가?' 근거 없는 자만심에 빠지기도 하였다.


'두둥 탁.'


방심한 어느 날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말았다. 슈퍼면역자는 개뿔이었다.

정부의 마스크 해제 공식발표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이해진 어떤 빌런이 거리를 휘젓고 돌아다닌 모양이다. 추측되는 감염경로는 딱 하나다. 지난 토요일에 들린 식당의 옆 테이블 빌런이 그렇게 코를 풀어대더라니.


그날 밤부터 뼈마디가 쑤셔오기 시작하였다. 설마 하면서 다음날까지 이불을 동동 싸매고 물도 많이 마시며 꼬불쳐두었던 감기약까지 먹어가며 나름의 수성전을 치렀다. 그러나 서서히 오르는 체온과 온몸을 쑤시는 몸살을 어찌할 수 없었다. 늦은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병원에 갈 걸 그랬다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필이면 일요일인가. 결국 병원 가는 걸 하루 늦추게 되니 밤새 코로나와의 혈전을 벌여야만 했다. 개나리야, 네가 이겼다.


확진 첫날.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갔고 결국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독감까지는 아니란다. 검사비만 날렸지만 다행이었다. 격리를 5일 동안 해야 한다는 말에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 하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그보다 전날 저녁부터 굶었는데 고열까지 있어 속이 정말 뒤집어졌다. '괜찮아, 괜찮아. 전에 감기 많이 걸려봤잖아. 그때랑 다르지 않아. 죽을 정도는 아니야.'라며 세뇌를 걸어 보았지만 엄살 좀 보태서 죽을 것만 같았다.


둘째 날.

약기운에 잠만 잤다. 약을 먹어야 해서 밥을 먹어야 하고 약을 먹으면 잠이 오는데 몸은 아프고 고단했다. 끼니때마다 이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오래 누워 있다 보니 허리까지 아픈 건 코로나의 서비스였다.


셋째 날.

약기운에 취해 잠을 하도 잤더니 이제는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날부터 미드에 빠졌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남주가 요리사라서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니 먹고 싶은 게 많았지만 입맛이 나질 않았다. 살기 위해 배달의 민족을 눌렀다. 머리로는 식욕이 돋는데 몸은 식욕을 상실한 웃픈 상황에서 괜찮던 목이 갑자기 붓고 아프기 시작하였다. 사람 가지고 노네.


넷째 날.

낮에는 괜찮다가 저녁에 자려고 하면 몸살이 찾아왔다. 독감은 그래도 독감약을 챙겨 먹으면 하루하루 괜찮아지던데 코로나는 밤만 되면 새로운 증상이 찾아왔다. 몸살과 후두염 증상이 번갈아가며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악질이다.


다섯째 날.

이제 겨우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 하던 마른기침이 찾아왔다. 너는 대체 왜 온 거니. 후유증이라는 건가? 코로나 걸렸던 사람들에게 배즙 사 먹어 보라고 아무렇지 않게 권유했었는데 이제 내가 주문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근데 먹으나 안 먹으나 낫는 기간이 같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


이후.

오히려 코로나 첫날 생생했던 목 상태는 더 안 좋아져서 코 맹맹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냥 들어도 이상하길래 녹음을 해 들어보니 웬 이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도 불러보니 역시나 딴 사람이었다. 마른기침과 코막힘이 당분간 후유증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회사 복귀 후 혹시나 싶어 회사 사람들과는 점심을 따로 먹었다. 괜히 누군가에게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점심시간을 10분 정도 늦게 갔는데 결국 식당에서 마주쳤다. 마주친 직원왈 '어차피 같이 나와서 따로 테이블 잡으면 되지 않겠냐'며 웃는 거다. '오, 천잰데?' 그래도 당분간 고독을 씹으며 혼자 먹으련다.


아직도 몸살 비슷한 게 찾아오는 거 같기는 한데 코로나 후유증인지 뭔지 모르겠다. 의사들 가라사대 전염성은 없다 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만 코로나가 완치가 안 된 것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 미각을 상실한 건 아닌데 미각이 복구 안된 상태에서 뭔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듯싶다. 그 맛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게 맞으려나?


근데 에밀리네 회사는 에밀리 혼자 수익창출을 다 시키던데 왜 사장은 에밀리를 그렇게 자르려고 할까. 루팡의 나라라 그런지 나머지 직원들은 다 월급루팡이던데. 나도 파리에 가서 진정한 루팡이 되고 싶다. 한국어만 가능한 사람은 안 뽑나?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이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