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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Feb 17. 2023

새벽에서 아침까지

안녕, 폰 끄고 잘 자요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손을 뻗어 휴대폰으로 찾는다. 시간은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좀 더 늦게 일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혹은 좀 더 빨리 깼더라면 좋았을 것을. 잠시 멍 때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꽈리를 틀고 스스로 휴대폰의 노예가 된다.


너튜브에 접속하여 정치, 아이돌, 유머 등의 여러 쇼츠 영상을 보다가 이제 하나만 보고 꺼야지 하나만 보고 꺼야지를 되뇐다. 그리고 그렇게 몇십 분이 훅 지나간다. 끊을 타이밍을 계속 놓치다가 그나마 잘 모르거나 재미가 덜한 영상이 걸리면 그제야 겨우 제동을 걸고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너튜브로부터 탈출은 하였으나 이미 잠은 가출한 상태라 아직 휴대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앱을 누른다.


글 쓰는 공간에 들어서자 새로 올라온 글들을 읽었고 글 소재 관련하여 짧은 생각(주관적으론 짧은데 객관적으론 길 수도 있는)을 댓글로 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휴대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데 알람이 울렸다. 댓글의 답글이 올라왔다는 알람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답글로 올라온 이와의 티키타카의 늪에 금세 빠져 버렸다. 그렇게 또 몇십 분이 흘러갔다. 어떤 타이밍에 상대방의 답글에서 '나 잠 와요'의 낌새가 느껴지자 '좋아요'를 클릭하고 혼잣말을 날린다. '안녕, 폰 끄고 잘 자요.'


그제야 물 한 잔 마시고 자려는데 집 밖 가까운 곳에서 큰 굉음이 들려왔다. '천둥인가?'갑자기 한 겨울에 천둥? 이상하다 싶어 들렸던 소리를 다시 되뇌니 천둥소리는 아니었다. 뭔가 큰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교통사고일까? 새벽 시간이라 어둡고 추운 탓에 나가기에는 애매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가기에 매우 귀찮았다. 문득 112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가까이 들린 것으로 보아 아파트 앞 근처에서 난 사고이며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며 신고를 하였다. 혹시 사고 주변이냐고 묻는데 자다가 들은 소리인 데다 어두워서 나가기는 좀 그렇다고 하였다. 차마 귀찮아서 나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앰뷸런스 소리가 나지 않았던 걸로 봐서는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며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신고도 했지만, 그래도 나가볼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혹시나 싶어 출근길에 사고가 났을 법한 거리를 둘러보았지만 사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큰 충격이었다면 자동차 파편이 도로에 흩어져 있을 텐데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회사에 출근하여 112에 연락해 보니 희한하게도 내 번호로 등록된 신고가 없다는 거다. 가까운 경찰청으로 연결이 되다 보니 지역이 달라서 조회가 안 된다고 한다. 2023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20세기를 걷고 있는 것만 같은 일들을 발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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