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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Feb 20. 2023

고백

글쓰기의 시작과 현재 진행에 대한 솔직한 고백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숙제로 내준 일기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때 썼던 일기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는 데다가 기억의 한계 때문에 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날씨 얘기가 다였을 것이다. 방학숙제로 밀린 일기를 쓰려고 쌓여 있던 신문의 일기예보란을 죄다 뒤져서 날씨 얘기로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의무가 아닌 선택에 의해 일기를 쓰게 되었다. 그러다 그 일기 쓰기를 멈추게 된 건 중학생 때였다.

일기장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적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 학교를 다녀와서 저녁을 먹던 중이었나? 아버지가 꿈이 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뭐긴 뭐야. 슈퍼맨이겠지.' 갑자기 소름 돋았고 다음날 바로 일기장을 태워 버렸다.


그 뒤로 다시 한참 멈추었다가 언제부터인가 다시 썼는데 또다시 멈추게 된 건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일기를 쓴다고 하니 보여달라는 거다. 그런 말을 왜 했을까. 여자친구 입장에서 당연히 보고 싶어 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보여주지 말았어야지. 결국 보여줬다가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 좋아했던 여자에 대한 페이지가 노출되고 말았다. 차마 거기까진 생각을 못하고 보여줬던 것이다. 그 바보 같은 일로 일기장을 다시 태워 버렸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기록이 아예 없다.

수치심을 극복했더라면 어설픈 기록이었더라도 기록이 남아 있었을 텐데. 그때는 기록이 이렇게까지 아쉬울 줄은 몰랐다. 기억의 한계가 이렇게까지 심할 줄도 몰랐다.


그러다 띄엄띄엄 이긴 하지만 2009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어설픈 기록들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뒤져보니 대체로 짧다. 이런 식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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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사용하는 아내 폰을 열어

Siri를 띄웠다.


마침 영화 '밤의 여왕'을 보고 있던 터라

관련자료를 검색하려고

'밤의 여왕'이라고 말하니

Siri는 '밤의 여관'을 검색하였다.


Siri야, 내 발음이 그렇게 구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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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가 붙으니 재밌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좋아요'를 눌러주던 사람 중에 리액션의 사탕발림을 잘해주던 이가 있어 글 쓰는 재미가 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격분해서 적었던 글도 눈에 띈다. 이건 아내가 보면 목숨이 열개여도 큰일 날 글이라 조만간 삭제해야 할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읽으니 이딴 글을 왜 썼을까도 싶고 웃음만 나온다. 그땐 참 어렸구나. 나의 30대는 이렇게 감정적이었나.


이런 생각 짧고 실제로도 짧았던 글은 2015~6년 밴드로 옮겨지며 살이 붙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연상인 분들이 많았던 글쓰기 밴드였던 터라 그분들에 비해 젊은 감각의 글은 관심을 받았다. 그게 독이었다. 그 재미에 빠져 더 좋은 글을 쓸 생각을 못한 것이다.


브런치가 나오고 단번에 입성을 하니 그 재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러다 책 내는 법에 대한 오프라인 강의가 있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간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조금은 비싼 수업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강한 것은 오프라인의 글 쓰는 동지를 찾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른 수업 방식은 글쓰기를 질리게 하였다. 처음에 강사가 시킨 일은 수강생 10여 명과 약 50cm 거리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게 하는 일이었다. 20대 처자들이 많았는데 바로 코앞에서 자신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당시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그들에게 반가울 리 있겠는가. 강의는 폭망이었다. 게다가 강의를 끝내면서 제출한 부끄러운 단편 소설은 그 어느 누구도 호응이 없는 최악이었다. 수필과 소설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새삼 깨달았다.


그 후로 1~2년 동안의 브런치는 긴 동면에 들어가고 말았다. 글 하나 쓰는 데에도 어찌나 피로감을 느꼈던지 끄적거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어쩌다 보니 다시 글 쓰는 재미를 회복 중에 있다. 뭐 대단한 작가의 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설픈 일기를 쓰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제는 내 글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나의 그림자 같은 게으름이라는 녀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뭔가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말이다. 누군가 재밌게 읽어주면 좋은 것이고, 먼 훗날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는 그걸로 만족하려고 한다. 일단은 여기까지다.


또 게으름이 나른함을 소환한다.

그래서 고백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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