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미안하다고 할 때 필요한 건 미안한 마음이지 핑계가 아니다

by 생각하는냥

지난 주,

그들에게 난 궁지에 몰아넣은 쥐처럼 몰아넣었고

단 하나의 선택의 기회를 줬다. 당연히 그걸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그게 나의 선의였고 배려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엉뚱하게도 다른 선택을 했고

그들은 그것이 나에 대한 배려이자 선의라고 생각했지만

그 뜻하지 않았던 선의는 결국 나에게 모욕을 주고 말았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화살을 당겨버렸다.

그들의 심장에 정확히 꽂히기를 바라고 당긴 화살은

살생을 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인지 크게 어긋나고 말았다.


그래도 내가 화살을 날렸다는 건 알렸으니

그들이 앞으로 내게 선의와 배려라는 명목으로

크게 실수를 저지르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받아낸 진정성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한명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체 기분만 상해있는 듯 하고

다른 한명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설명할 뿐, 내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없다.


미안한 마음에는 핑계가 없어야 한다.

미안한 일을 하면 대개 사람들은

"미안해" 란 말로 시작은 하지만, 결국 핑계로 본론을 채운 뒤

결국 미안한 짓을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화를 낸 너가 나쁘다 라는 결론을 끌어내고 만다.

그게 사과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지르는 실수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그건 이러저러해서 이렇고 저런 거니 결국 미안한 행동을 한 게 아니야.

이 말인 즉슨 화를 내는 너가 잘못한 거야. 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게 무슨 사과야.

차라리 씹어먹을 수 있는 아사삭 거리는 사과를 하나 사주는 게 오히려 진정성이 있지 않겠나.


이런 결과를 초래할 때면,

선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내게 옳은 일인지 가끔 혼란스럽다.

그래서 선에서 벗어난 길을 가보면 뭔가 불안하다.

어려서 도덕점수를 100 점 맞고,

어려서 교회를 다니며 선한 행동에 세뇌를 받은 탓일까?


일부러 가끔 선에 벗어난 길을 가보고 저지른 행동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스스로를 격려해본다.


"잘했어. 잘했어."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양심이란 녀석이 가슴에서 요동을 치며 외친다.


"너 왜 그랬어?"


"....."



양심이란 놈을 찾을 수 없는 저 먼 지구 끝으로 유배를 보내고 싶다.

동그란 원의 시작점과 끝점이 같으니

결국 동그란 지구는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끝나니 유배시켜봤자 내 마음속에 가두는 것 뿐이겠네.


가슴 속에 따뜻한 양분이 필요하다. 커피라는 이 액체가 구멍난 가슴을 떼워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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