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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Mar 03. 2023

누군가에게는 군대 이야기 같을 수 있는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카이 마코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애니메이션이란 아이들이나 보는 걸로 치부되곤 하였다. 아마도 디즈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어디 가서 애니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이는 '오타쿠'아니냐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카톡 프사를 애니로 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비슷한 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이 좋은 걸 어쩌랴. 아니, 정확히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카이 마코토가 좋다. 그 두 감독의 작품은 단순히 애니라고만 하기엔 너무도 아깝다. 누가 일본 아니랄까 봐 장인의 혼이 작품에 실려 있는데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으랴.


1990년대의 어느 해인가 친구가 좋은 걸 보여주겠다고 하니 당연히 빨간 테이프를 상상하며 따라갔었다. 그런데 웬걸. 털북숭이가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데 너무 귀여운 거다. 그렇다. '이웃의 토토로'였다. 이걸 보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본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듣기 싫은 군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후 미야자키 중독자가 되어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등 어둠의 경로와 극장을 쫓아다니며 나의 2030의 행복들을 채워 나갔다. 그 어렵게 봤던 작품들을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클릭 한 번으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니 늦게 태어날수록 개이득이다.


그런 어느 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선언을 한다고 하였다. 계속 함께일 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런 거장의 퇴장 소식은 너무도 아쉬웠다. 행복을 이대로 강탈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무룩하게 보내던 중 하나의 애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라는 걸 제목으로 내걸었다는 것부터가 이과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작화를 보는데 한마디로 짧게 표현하면 '미쳤다.' 이건 애니일까 미술작품일까? 거기에 감성 가득한 이야기가 도깨비에라도 홀린 듯 심장을 몽땅 도둑질해 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언어의 정원'은 매년 초여름인 5~6월이 되면 꼭 보게 되는 작품이다. 애니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게 비 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모든 애니 통틀어 비 오는 장면을 이리도 잘 표현한 건 없을 것이다. '언어의 정원'을 틀어놓고 누워 있으면 무더운 여름밤에도 잠을 잘 자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검증은 나 홀로일 뿐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작용이 일어날지는 모르겠다.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기 작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얘기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여자 목소리 빼고 혼자서 제작을 한 4분 49초짜리 흑백 애니이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영상 없이 자막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이 간결한데 모든 걸 담고 있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어떤 작품보다 아련하고 애틋하며 따뜻함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정신이 사납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혹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이 짧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곤 한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주장하건대 문학을 전공했던 감독은 이 작품에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에 대한 모티브를 담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그의 최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국내 개봉 3월 8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군대이야기 같겠지만 나에게는 온 우주의 기운을 빨아들일 만큼 가슴 두근거릴 일이다. 음. 혹시 '오타쿠인가?'. 아니다. 오타쿠라고 하기엔 전문지식도 부족하지만 수집광도 아니다. 그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설렐 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철회하고 올해 7월에 신작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 나 쫌만 더 행복해져도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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