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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Mar 28. 2023

분홍과 피어싱의 진격

분홍이었다.


지하철 안 5미터 거리쯤에 서 있는 여인의 머리에 분홍색 스카프가 눈에 띄었다. 동남아 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한 스카프일 거라 생각하였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스카프가 아니었다. 웨이브가 분명한 것으로 보아 스카프가 아닌 분홍 머릿결이었다. 많은 사람들에 가려져 살짝살짝 보였기 때문에 한 번에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홍빛에 이끌려 계속 보게 되었다.


다시 보니 목이 살짝 굽고 허리와 배 부위가 비만인 데다가 손잡이를 잡고 있는 주름진 손으로 보아 그녀는 노인이었다. 그제야 그녀의 분홍빛 머릿결에 흰색이 가미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멋쟁이 머릿결을 가진 할머니치고는 후줄근한 가방에 너무도 평범한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였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아 친숙해져서 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그냥 이웃집 할머니 같은 인상.


궁금하기는 하다. 누가 그녀의 핑크 염색에 불을 질렀을까. 미용실에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녀의 손녀가 권해서였을까 아니면 잘 보이고 싶은 할아버지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TV를 보다가 문득 질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할머니라고 질풍노도의 DNA가 없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저 나이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인데 핑크색으로 염색하니 그녀의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음은 부러움을 자극한다.


아직 노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얇아지는 머리카락과 머리 감을 때마다 수챗구멍에서 걸러지는 머리카락 뭉치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데 말이다. 어중간하게라도 머리가 빠져 민머리가 드러난다면 다 밀어버리겠노라고 다짐해 보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머리카락 빠지는 것을 자꾸 신경 쓰는 것도 머리카락 빠지는 것을 촉진시키는 스트레스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그래도 잠깐만 상상해 보자. 거울에 비친 나의 반짝거리는 대머리.

'뜨아!'


그러던 찰나,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178쯤의 키에 청바지, 흰색 배꼽티를 한 여인이 들어오는데 이미 뽀샤시한 그녀에게 근처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녀의 배꼽티 밑으로 뽀얀 피부와 가냘픈 허리에 피어싱이 절정을 찍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배꼽 피어싱을 한 사람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자연히 시선을 빼앗겼지만 뚫어져라 보다가는 꼴불견이 되고 만다. 섹시해서 바라보게 되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바라보는 거라고 한다면 믿어 줘야 한다. 어디 가서 배꼽 피어싱을 보겠는가. 멋있으라고 보라고 한 피어싱일 텐데 변태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순간적인 잠깐을 할애해서 보는 건 매너가 아닐까. 힐끔힐끔 바라보는 건 관음증이므로 안 된다.


코로나라는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람들이 많이 웅크려 있었던 것 같다. 웅크렸다 튀어 오르는 용수철 같이 음식이나 영화 같은 물가들도 뛰어올랐지만 사람들의 멋스러움도 튀어 올랐다. 멋스러움에는 나이가 상관없다. 당황스럽긴 해도 할머니의 핑크 염색이나 보는 이가 남사스럽긴 해도 배꼽 피어싱이나 그 멋이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자기를 보여주는 방식의 하나라고 한다면 무엇을 하든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당장 내가 할 취향의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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