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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Mar 30. 2023

무엇이었을까

무심코 하는 행동조차 '그냥'이라는 말로 에둘러 말할 수도 있지만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어떤 행동에는 어떤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무심코 하는 행동조차 '그냥 '이라는 말로 에둘러 말할 수도 있지만 의도 없는 행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난처해지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이라는 방어기제를 발동할 뿐.


지하철이 지상인 역의 플랫폼에는 두세 평 남짓한 대기실이 있다. 겨울 동안 감사한 마음으로 이용을 했었는데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퇴근길에도 종종 들리게 되는 곳이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던 그날에도 대기실에 들어가 앉았다. 바로 코앞 맞은편에는 근처 대학교에 다닐 것 같은 두 명의 여학생이 폰을 들여다보며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뻘쭘하지 않기 위해 나 또한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검은색 그림자가 불쑥 들어와 한 여학생 옆에 앉았다. 그녀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렸을 무렵, 그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폰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그런 행동을 했기에 일행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꽤 지저분한 단발머리를 한 노숙자의 몰골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눈치를 보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후 계속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그가 불안하였다. 보통의 날 같았으면 노숙자와 한 공간에 있다면 당연히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을지 모를 벼룩이 사방으로 뛰어 내 몸으로 이민을 시도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의 모낭충이 신선한 먹잇감을 찾아 이전을 해올지 어떻게 아나. 그런 것을 떠나 그의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전염되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그날은 혹시라도 여학생들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도저히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노숙자라고 대기실에서 쫓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사적인 공간이었다면 아마도 바로 내쫓고도 남았을 것이다. 보통은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경계를 한다거나 자리를 피하는 게 당연할 텐데 여학생들은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게 더 답답하였다. 노숙자인 줄 몰라서 그랬을까? 바로 옆자리인데 그런 눈치가 없었을까? 그녀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폰만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바로 옆이다 보니 옆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지하철이 다가온다는 안내음이 울리자 그제야 자리를 떠나는 그녀들, 그리고 그 뒤로 노숙자도 따라나섰다. 따라가야 하나 싶었지만 대기실 밖은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서 있었다. 따라나섰던 노숙자도 그 인파 속에 여학생들이 뒤섞이니 포기한 듯 대기실 입구를 서성거렸다. 


그의 표정을 보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표정이랄까. 주관적인 느낌이었을지 모르지만 딱 그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혐오라는 감정은 그가 노숙자라서 가지게 되는 감정이 아니다.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감정이다. 상황만 봐서는 객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너무도 주관적인 뇌피셜이 가미되어 위험을 감지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것도 별로 없는데 피곤한 몸은 언제나 늘 그랬듯 같은 퇴근 경로를 밟아 집으로 향한다. 나의 달콤하고 포근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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