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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Apr 12. 2023

라면이 달걀을 만났을 때

경험이 편견이 되고 고집이 되는 순간

가스레인지 위에는 라면이 팔팔 끓고 있었다. 다 익을 즈음 마지막으로 달걀을 넣기만 하면 상상하던 라면의 최종 형태가 완성되는 미식이 완성되는 타이밍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며칠 전 사온 달걀 10개짜리 한 판에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금이다.'


숟가락을 들어 달걀을 살짝 세게 두들겼다. 껍질에 금이 갔다. 응? 그런데 이 깨지는 낯선 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생달걀 껍데기가 깨지는 그것과는 다르게 바삭함이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살살 옆으로 두드리며 금을 더 낸 후 껍질을 벌려 보았다. 흘러나와야 하는 하얀 자는 안 나오고 갈색 속살이 드러났다. 어라? 이것은 구. 운. 계. 란?


당황하여 멍 때리기를 약 5초간.

끓고 있는 라면을 방치할 수 없어서 구운 계란을 냄비 안에 투척하였다. 의미 없는 일인 줄은 알았지만 달리 선택할 게 없었다. 구운 달걀이라도 국물을 우려내보자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우려날 국물이 아니었다.


상상했던 라면의 최종 형태는 이미 아니었다. 결국 꼬불꼬불한 면발로 구운 달걀을 돌돌 말아서 먹는 게 고작이었다. 날달걀인 줄 알고 사온 달걀이 설마 구운 달걀일 줄이야. 


아마 마트에서 달걀을 집어들 때 분명히 분명 '구운 달걀'이라는 안내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을 것이다. 단지 달걀 케이스만 보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달걀일 거라고 너무 익숙하니까 무시하고 골랐겠지.


경험이 편견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이랬으니까 그러겠지라고 편견이 고집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안내 문자가 큼지막하게 있어도 옆에서 아니라고 알려줘도 경험이 편견이 되고 고집이 되는 순간 위험을 아무리 고지하여도 큰코다치고 만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다. 크게 한 번 당하지 않으면 편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뿌셔뿌셔', 생라면이 부서지는 소리다. 전날 당한 편견의 압박을 생라면을 씹어 먹으며 달래 보았다. 참 희한한 일이다. 같은 라면을 먹는 건데 물에 끓여진 라면이 생라면 보다 배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끓이면 되는데 후회할 걸 알면서 생라면을 부셔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끓인 라면이 확실히 더 맛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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