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을 하기에 더없이 좋고 잡생각을 하기에도 꽤 좋은 공간
지하철 안은 정적인 공간이라서 조금만 움직여도 시선이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관찰을 하기에 더없이 좋고 잡생각을 하기에도 꽤 좋은 공간이다.
출근길, 쭈욱 둘러보았다.
등산화에 바지끝단을 양말에 넣고 애슬레저를 지향하는 유명 브랜드의 바지와 바람막이 재킷을 입은 걸로 보아 등산을 가는 모양이다. 등산용 가방이 아닌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향이 가득 묻어 나는 백팩인 걸로 보아 높은 산을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저 안에는 오이라든지 방울토마토라든지 혹은 김밥이라든지 먹을거리가 들어 있겠지.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애슬레저 : 가벼운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면서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옷)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는 밤새 무엇을 했길래 이른 아침부터 졸고 있는 것일까. 그냥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겠지. 한때 젊은 날에는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양손 가득 쇼핑을 하고 다녀도 피곤한지 몰랐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머리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싶어 진다. '사용료는 500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다리를 꼰 처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깔맞춤 하였다. 모델까지는 아니지만 멋짐이 뿜어져 나왔다. 학생인지 직장인인지는 모르겠으나 학업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연애에 있어서도 자기 주도적일 것만 같다. 그런데 그거 아니? 쎄 보이는 사람이 실제는 여리더라. 근데, '신발 어디서 산 거야?'
남자는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여자친구의 두 발을 감싸고 서 있었다. 남자의 운동화가 여자의 운동화를 양쪽에서 감싸고 있다 보니 운동화 두 켤레가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벌려진 남자의 다리 사이로 여자친구의 손이 꿈지럭거리는 게 보였다. 남자친구 앞에서 수줍음을 타고 있는 듯싶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창조 경제다. 꿀이 뚝뚝 떨어진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지하철 안은 볼거리가 다양한 편이다. 모두가 따로국밥이라서 저마다의 작은 특징 하나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이야기를 지어내면 한도 끝도 없이 재미나는 공간이 연출된다. OTT보다는 못하지만 가끔은 그보다 더한 흥미를 유발한다.
그리고 간혹 있는 생뚱맞은 유형의 출현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