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를 취향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특별하지는 않은데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모두가 너무도 평범하면 조금만 달라도 눈에 띄는 경우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색각이상 테스트를 할 때 무수한 회색 동그라미 가운데 진회색 동그라미들이 숫자를 만들어내면 그 수를 말하는 테스트 정도라고나 할까?
그녀가 눈에 띈 것은 아주 이뻐서도 크게 특이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지하철 안의 대부분이 출근길에 시달리는 평범함이었는데 여자 치고는 약간 키가 큰 편이었다는 것, 그리고 하필이면 그녀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는 것뿐이었다.
겨울점퍼를 입고 있어서 몸매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겨울로 접어든 탓에 마스크를 한 것이 크게 특이한 점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웨이브의 긴 머리와 마스크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있었지만 진한 마스카라의 눈화장이 선명하였다. 겉으로는 꽤 나름 도시녀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하이힐을 앞꿈치만 낀 채 안장 다리로 앉은 것 또한 크게 특이점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하염없이 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손이 분주하였다. 그때 손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길쭉하고 늘씬한 손가락이었지만 여자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각이 져 있었다. 심지어 엄지손톱의 뭉툭함은 여자손에서 발견되기 어려웠다.
사람의 손은 그 사람의 인생과도 연관 지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가 대충 보이는 인생지도 중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은 길쭉하고 가늘면 손톱까지 관리가 잘 되는 편이고 손가락이 짧은 축에 속하는 분들 중에 손톱이 뭉툭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긴 손가락의 손톱이 뭉툭한 경우는 남자 손가락이 아니면 설명이 어려웠다. 특히 손등에 과도하고 선명하게 퍼져있는 실핏줄의 흔적은 남성의 손에서도 보기 흔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웨이브 진 긴 머리가 가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스크 뒤의 진한 마스카라도 그렇고, 하이힐을 앞꿈치만 넣고 앉아 있는 것도 그렇고. 여장남자를 의심해 볼 소지가 있었다.
개인의 취향의 문제니까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런 그도 화장실을 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 여장남자인데 여자화장실을 이용한다면 그건 선을 심하게 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그가 여장남자라는 확증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그가 뭘 하든 부디 선만 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해 봐라. 당신이 여장하는 걸 즐긴다 하더라도 타인이 여장을 하고 당신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 좋아하는 여자와 같은 화장실에 여장 남자가 들어갔다고 한다면 당신과 같은 취향의 여장 남자라 할지라도 그게 용서가 되겠는지 말이다. 용서가 안 될 텐데 당신이니까 용서가 된다면 그건 심각한 이기주의이며 개인의 취향을 떠난 심각한 '버그'다.
취향과 버그는 종이 한 장 차이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다. 버그를 취향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취향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때가 취향이다. 부디 이기주의가 만연하지 않은 세상이기를 빌며 출근길 하나를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