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물들어 가는 어느 날
가게에 들어가서는 벽에 걸린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여러가지 메뉴가 나를 오래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 중 하나에 꽂혔다.
"ㅇㅇ 주세요."
"주문 이쪽에서 도와드릴께요."
라며 불과 두걸음 걸으면 되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그의 안내대로 두걸음 옆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물었다.
"뭐 주문하실래요?"
아까 난 분명 ㅇㅇ 마신다고 했는데 그는 내가 했던 말은 안중에 없었나보다. 그가 단지 알바가 아니라 손님을 생각했더라면 뭘 주문했는지 기억 했을텐데. 단지 본인이 주문을 받는 곳이 아닌 바로 두걸음 옆에서 주문을 했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갈까? 달리 선택의 기회는 없었다. 굳이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되고 겨우 이런 일로 예민하게 굴면 욕먹는 세상이다.
다시 메뉴판을 바라보며 뒷사람에게 주문을 양보했다. 그러는 사이 원래 마시고자 했던 음료에서 400 원 더 줘야 하는 메뉴에 꽂혔지만 400 원을 더 주기가 싫어졌다.
원래 마시고 싶었던 거 말고 또 다른 600 원 저렴한 또 다른 마실거리를 찾았다.
1,000원이 더 비싸나 저렴하나 마시고 싶은 건 그때 그때 다른 법이고 큰 차이는 없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대로 움직인다. 아주 소심하지만 아주 무의미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비웃을민큼 무척이나 소심한 사유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 아주 소심한 사유에 의해 입안에 음미하고 있어야 했을 자몽맛이 화에트 쵸콜렛으로 변해 있었다.
소심한 사유였다. 한번 말했던 메뉴를 기억해주지 않아 삐졌고 그의 말에 따라 주문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삐졌다. 그래서 소심한 복수는 그저 상대방은 인정하지도 않을 그리고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 채 그렇게 가해졌다.
아, 달달하다.
소심한 토요일 저녁이 시작되어간다.
그토록 밝았던 거리가 어둑어둑한 검은 염료에 물들어간다.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사람의 냄새가 네온사인의 배터리가 되어 빛을 발하며 거리를 장식한다. 여유가 가득한 뽀송뽀송한 시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