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드는 궁평항의 저녁 노을
연휴의 마지막 날, 어쩌다보니 몸은 이미 궁평항에 가 있었다. 원래는 오전에 일찍 다녀오자고 했는데 방바닥을 뒹굴다보니 오후가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많은 인파 외에 많은 차량들 덕에 주차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여차여차 겨우 궁평항 시멘트에 발을 내딪자마자 바다 바람과 함께 수산시장의 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가을전어를 먹자고 온 건데 회맛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초고추장을 잔뜩 발라 먹을 생각만 가득이다.
가을전어 맛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회맛을 잘 모르면서도 어찌 물고기가 이리도 고소한 맛을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소미라는 과자 못지 않게 고소하다. 다만 생김새를 봐가며 먹는 나로서는 회떠진 생김새가 뱀껍질 같기도 해서 그닥 정은 가질 않는다.
음식점 벽에 붙어 있는 "새우머리 버터구이" 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새우버터구이도 아니고 새우머리 버터구이란다. 버터구이니까 얼마나 빠삭할까 싶다가도 왜 하필 새우머리만?
그때였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식사를 마친 후 우르르 몰려 나갔다. 그분들 나간 테이블 구이판 위에는 대하를 먹고 남은 머리만 잔뜩 있었다. 그걸 조심조심 치우시는 아주머니의 손길을 보는 순간 설마 저걸로 만드는 건 아니겠지? 설마설마.
식당에서는 전어만으로 떼우고 밖으로 나와 줄지어 서 있는 포장마차 거리로 나가 대하튀김을 사 들었다.
배가 든든해지니 그제서야 궁평항의 가을 하늘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순간 훅...
많은 인파에 치이고 치이는 순간임에도 가슴에 들어온 말로 형용하기에 벅찬 가을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가을 하늘의 저녁노을이 사람을 순간 몽롱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지상은 시장바닥인데 하늘은 자연이 그린 예술품이 잔뜩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마음을 뺐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길을 걷자면 뺐긴 마음을 다잡아 인파를 헤쳐가느라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와중이었다. 어느 한 벤치에 앉아 있는 고혹한 여인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참 곱다. 근데 정말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다시보니 동창얼굴이랑 비스므리 하게 생겼다. 설마 이 넓은 대한민국 땅에서 친구를 만날리가. 그리고 내가 알던 그 친구는 닮긴 했지만 저렇게 곱진 않은데. 가족들이 함께 일 거 같아 아는 척은 안하고 혹시나 싶어 톡을 날려보았다. 그냥 설마였다.
그런데 답이 바로 왔다. "너도 궁평항이니?"
신기한 가을 저녁이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아는 척했다가 모르는 사람이면 얼마나 뻘줌할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아는 체 하기엔 급하게 챙기느라 행색이 남루한 탓도 있었고. 그래도 아는 척 해볼걸.
가을로 접어드는 궁평항의 저녁 노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쌀쌀하고 컴컴한 어두움이 세상을 뒤덮어 간다. 그래도 신기라도 하고 재밌기도 한 게다가 고소함이 한가득했던 하루는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간다.